예전에 제가 애인대행 해 드렸던 타 단과대 선배님을 보게 되었으므로 썰을 한번 풀어봅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제가 대학교 졸업한 지 1~2년 내였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당시 타 동기들보다 빨리 졸업 + 취업한 편이였던 저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충실한 자본주의 노예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요.
그 와중 교양수업에서 친해졌던 타 단과대 동기(남자)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뜬금없이 이런 부탁 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혹시 자기 선배의 애인대행을 해 줄 수 있냐는 얘기였는데요.
모름지기 애인대행이라 하면, 돈으로 여자를 사서 애인인 척 다소 음험한(?) 짓을 하는 모습이 상상되었기에
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며 정색을 해 주자 '아니 그게 아니고......;;' 하며 본격적인 사연이 나옵디다.
친구와 참 친한, 3~4학번 위의 선배가 있는데 그 분이 최근에 학과에서 참 곤란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 학과가 여학생이 드문 남초학과이다 보니, 새로 들어온 귀엽고 애교많은 새내기 한 명이
과 선/후배 할 거 없이 전체를 꽉 잡고 앙큼하게 주무르고 있었나 봅니다.
그 새내기가 당시 고학번이던 선배를 마음에 들어해서 약 한달 반쯤 달짝지근하게 사귄 것까진 좋았으나,
다른 선배랑 그새 눈이 맞아서 뻥 차버리고 헤어진 거죠.
새내기의 새 남친은, 친구 선배와 학번은 같지만 영향력이 더 큰 (= 학과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었기에.....
성격만 좋은 ㅠㅜ 그래서 남후배 몇몇에게만 '좋은 형'으로 평가받던 그 선배의 입지가 참 좁아졌다더군요.
과 특성상 전공수업이며 과 활동이 계속 겹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새내기녀와 새 남친이 찰싹 붙어앉아
둘 사이 애정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며 그 착한 선배를 실컷 조롱하고 무시했다나 봅니다.
듣기로는 그 선배가 새내기녀에게 '헤어지기 전 한번만 다시 생각해 달라'고 보낸 간곡한 문자까지
과 모임에서 마구 돌려보며 들으란 듯 크게 키득거렸다고 하네요 ㅠㅜ
애초에 새내기녀의 발칙한 어장관리가 첨부터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 친구는,
자기와 친한 형이 그런 취급을 받으니까 너무 분해서 더는 그 꼴을 봐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 과 모임 때 선배의 새 여친이라며 제가 짠~! 하고 나타나 그 새내기녀에게
인생의 쓴맛(?)을 좀 노련하게 보여주길 기대했나 봅니다.
외모도 당시 괜찮았고(ㅈㅅ), 같은 단과대 출신이 아니라 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생글생글 웃으며 능글맞게 뻘소리하는 제 성격까지 완전 200% 적격자라고요.
물론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고, 전혀 상관없는 얘기였지만 그때의 전 상당히 심심했습니다.
자유를 실컷 누리던 대학교 생활에서 갑자기 월-금 오전 9시 : 오후 7시까지 꼬박꼬박 출퇴근하는 노예가 됐는데,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너무 지겨워서ㅜ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죠.
그래서 깔끔하게 치킨찬스 두 번으로 거래를 성사하고 그 선배라는 분을 만나서 미리 말을 맞췄습니다.
당시 키 약 174쯤에 마른 체형 + 뿔테안경 끼고 계셨는데, 초면에 저를 너무 낯설어하셔서 힘들었어요 ㅋㅋ
아니 애인인 척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낯설고 수줍어하시면 어떡한답니까!!!
그래도 약 4시간에 달하는 친목 다지기 + 새내기녀에 대한 뒷담 + 사전정보 습득 + 추후계획 수립 등
다양한 절차를 거쳐서 다행히 어느정도 친숙해졌고, 필요한 정보도 충분히 얻었습니다 : D
그래도 당일날에 또 저를 새삼스럽게 낯설어 할 수도 있으니, 모임 당일날 2시간 전 미리 만나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분위기를 좀 친근하게 풀어놓기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헤어졌어요.
그리고 모임 당일날 저는, 미리 맞춘 몸매가 부각되는 정장 미니원피스 + 미용실 드라이 세팅까지 한 뒤
첫월급으로 샀던 반짝반짝한 미니 명품백까지 들고 과 모임장소로 향했습니다 : D
사실 대학생 때는 젊고 찬란해서 참 예쁘긴 한데, 저는 사회생활하는 여자가 좀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대학생은 아무래도 어려서 풋풋하고 예쁘긴 한데, 돈이 부족하잖아요 돈이. (매정)
외모 가꾸기의 대다수가 다 자본에서 나오고, 그 자본을 직접 조달하는 사회인이 짱입니다.
저는 그 점에 착안해서, 초면부터 기선제압을 위한 부티나는 + 몸매가 드러나서 성숙한 사회인다운 세팅을 하고 갔어요.
미리 도착해서 만난 선배분과 약 2시간 가량 밥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자, 확실히 분위기가 친근해졌습니다.
거기다 연인을 가장해야 하니 미리 손도 잡아보고 ㅋㅋ 머리나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연습도 한번 해 보고요.
저는 집에있는 제 남동생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했는데, 되게 쑥쓰러워하셔서 저도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ㅋㅋ 아이 참...
그래도 역시 반복학습이 효과 최고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좀 덤덤해지시더라구요.
거기에 제가 '그 새내기녀에게 복수하셔야죠 ^ㅅ^?' 하고 새삼스럽게 목적을 상기시켜 드리니 더 확고해졌고요.
역시 자존심을 건드리고 진심을 조롱하는 게, 사람에게 가장 큰 복수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인가 봅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남의 눈에 눈물나게 했으면 자기 눈엔 피눈물 난다는 걸 알아야 할 나이잖아요.
선배분이 고학번에 속해서 짬도 되다 보니, 과 모임장소에는 일부러 시선을 끌려고 약 20분쯤 늦게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눈으로 빠르게 스캔해 보니, 몇 안 되는 여학우들은 역시나! 대부분이 티셔츠 + 청바지 차림이었습니다.
그건 다른 남학우들도 대략 비슷했고, 과 모임이다 보니 다들 재학생다운 풋풋하고 편안한 차림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 분위기에 무려 ㅋㅋ 미니 정장원피스 + 긴 웨이브 헤어 세팅 + 블링한 풀메이크업을 한 낯선 제가 등장하자 ㅋㅋ
강제로 모임 전체의 시선을 강탈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원체 능글맞은 성격이라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한번 숙여 대충 인사한 다음, 선배의 팔짱을 낀 채로 들어가서
비어있던 자리 중 가장 센터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물론 선배의 손을 꼬옥 잡고요.
그리고 낯설어하는 척 순진한 얼굴로 눈을 굴려보니, 제가 들은 인상착의와 흡사한 새내기녀가 보이더군요.
다른 여학우들과 마찬가지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바지는 매우 짧은 핫팬츠였고 티셔츠도 깊은 V넥이라
다소 통통하고 귀여운 몸매가 부각되었으나....... 제가 몸매가 더 좋았습니다. (뿌듯)
모임장소는 대충 눈으로 봐도 분위기가 딱 나뉘어 있었는데, 시끌벅적 제일 요란한 새내기녀 무리와 그 외 평범하고 조용한 다른 학우들이었습니다.
본래는 이렇게 두 무리로 나뉘어 쭉 흘러갔겠지만, 낯설고 눈에 확 띄는 제 등장으로ㅋㅋ 새내기녀 무리의 호기심 대 폭발!!!
자기들이 과의 주류겠다, 별로 거리낄게 없었는지 새내기녀 무리의 남자 한 명이 은근슬쩍 "야 오랜만이다~"를 시전하며 이쪽 무리에 다가와 끼었습니다. 제 정보를 캔 다음 자기 무리에게 떠벌리려는 의도가 200퍼 확실했습니다. 촉새같이 생겼으니 이하 촉새라고 부를게요 : )
다른 학우와 건성으로 인사를 마친 촉새 군이 마치 그제서야 저를 발견한 것처럼, 어색하게 놀란 척 하며 제게 "누구세요? 저희 과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 전 슬쩍 눈을 굴린 저는 새내기녀가 이쪽을 보고있음을 확인하고 수줍게 웃었습니다.
"아뇨~ 과 학생은 아닌데 00오빠 여자친구에요. 괜히 끼어서 어색하셨으면 죄송해요."
"아 그럼 00형 애인분? 형 따라 오신건가?"
여기서 잠시 한 템포 쉬고, 부끄러운 듯 선배를 보고 웃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00는 좋겠다~ 부럽다~ 여친이 데려다준대!' 등등을 떼창 중인 학과생들에게 마지막까지 좋은인상을 주기 위해 눈웃음치며 인사를 공손히 하고 나옵니다.
안전을 위해 역까지는 계속 연인인 척 붙어서 빠르게 나온 후, 보는눈이 없는 걸 확인하고 담백하게 떨어져줍니다.
"어때요? 저 좀 잘한거 같아요?" 하고 묻자, 술기운에 쑥쓰러움을 날린 선배가 개운하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솔직히 쫌 오버인 부분도 있긴했는데, 속 시원했고 재밌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시간이 늦었고 제 임무는 끝났기에, 쿨하게 택시타고 같이 떠나줍니다.
혹시나 대중교통을 타거나, 따로 가다가 학우들에게 들키면 난감하므로 후딱 같이 택시잡고 떠났습니다.
가는 길 도중에 선배를 내려주고, 저도 집에 도착한 후 보니까 선배에게서 장문의 카톡이 와 있습니다.
'그간 많이 괴로웠고 나쁜 생각도 했는데, 오늘 도와주셔서 덕분에 마음의 앙금이 많이 풀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힘든시기에, 저를 도와준 님께 많이 의지했었나 봐요. 이성적으로도 많이 끌립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니시라면... 연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보고 잠시 선배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과 애잔함이 밀려들어 고민해 보았습니다.
당시 저의 퇴근 후 유일한 여가생활은 아이온 RPG였고, 꾸준한 일퀘/유물노가다를 통해 저는 곧 5성장교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연애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선배의 바람대로 두 번 다신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의뢰인인 친구에겐 치킨 2회 + 커피까지 다 챙겨서 받아냈고요.
그간 쭉 잊고 살았는데, 우연히 맺은 sns 친구의 추천목록에 그 선배가 떠있길래 문득 떠올라 썰을 풀어보았습니다ㅎ
지금은 결혼해서 예쁘고 아담한 부인에, 귀여운 갓난쟁이 아이 하나 있으시더라구요. (성별은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