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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모노의 등장

 

7월의 여름바람이 ㅈ 같은 강원도 군대의 ㅈ같은 환경에서도 여름만큼은 그나마 시원하다라고 말하며,

내게 박힌 일병 작대기 두개의 무게가 슬슬 익숙해진다 느껴질때 쯤,

팍팍한 군생활 최대 이벤트, 신병이 들어왔다. 

둘이 들어왔는데, 한놈은 빼빼마른 대벌레같은 이미지고,

한놈은 턱근육이 이상하게 발달해서 꼭 아가미가 달려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게끔 하는 이미지였다.

아가미 달려있던 놈이 바로 이 혼-모노인데, 이새끼는 앞으로 2시간 안에 생활관을 터트리게 된다.

 

 

2. 제가 밖에선 선배인데

 

약 2시간 후, 생활관이 터졌다. 

그새끼가 자대에 와서 약 4시간만에 벌어진 일이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전설의 시작... 은 아니다.

혼-모노의 전설이 워낙 많은탓에 잊혀져버린 사건.

혼-모노의 11개월 선임인 이훈남(가명) 상병이 있었다. 

이제 투고에다가 막 실세가 된 군번인데, 그가 신병인 혼-모노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벌어진 일이다.

"제... 제가.... 밖에서는.... 서..선배인데... 저...저한테...마..막...대하다가...밖..밖에서...만...만나면....맞...맞을수도..있습..니다."

혼-모노가 생활관에서 이훈남 상병에게 한 말이다. 

 

짬차이 11개월, 그 사이에 존재하는 혼-모노이병 위로 이훈남상병 밑으로가 소대에만 14명.

자, 군필자라면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시간은 정지하고, 신병의 맞선임은 접고있던 속옷을떨어뜨리며 ('0')이런 표정으로 그 둘을 응시하고,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니 위로 내 밑으로'들의 머릿속에서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함께,

자신의 운명은 3글자로 축약이 가능하다는것을 인지하게되며 그 세글자가 끊임없이 울려퍼진다. "조때따"

말년병장조차 읽고있던 맥심을 떨어뜨리고 ('0')표정을 짓게 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의 구심점인 혼-모노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 날 밤, 나는 입대 직후부터 나에게 붙어있던 '천사' 타이틀을 반납하고

혼-모노를 중대 쓰레기장으로 끌고가서 조인트를 까게 된다.

 

3. 그는 왜 혼-모노인가

 

우리 모두는 그의 자대편입 직후 4시간만에 벌어진 재앙을 통해, 그가 얼마나 끔찍한 잠재력을 갖춘 신병인지를 인지했다.

고했실확 이임정예신병 는그, 우리는 2차, 3차 피해를 막기 위해 그의 과거를 들춰보기로 했다.

그는 입대 전, 지난 5년간 부모님 외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본적이 없으며, 히키코모리짓을 하고있었다 한다.

중학교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었고, 그게 계속되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이미 28세. 입대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었다.

 

"근데, 저런새끼가 어떻게 군대에 들어온 검까?"

"너나 나같은 병-신도 군대에 들어오는데 저런 정예신병이라고 못들어올까."

 

히키짓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애니를 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혼-모노는 한국말을 할때 상당히 더듬었으며, 사용하는 문법이 일본식이었다.

 

"군생활 목표를 말해봐."

"보..보..보통의.. 군인입...니다."

"...보통'의'? '니다'는 왜붙이냐, '니다'는. 차라리 '데스'라 하지?"

 

그는 오른 주먹을 꽉 쥐곤, 통탄하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치..치크쇼..!"라고 말했다.

물론 조인트를 까였다.

 

 

 

 

4. 방어기제

 

※여기서부터는 좀 더러우니, 보기 싫은사람은 보지 말라.

 

혼-모노의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대배치후 약 3일간, 이등병이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실수를 다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전설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범하기에(혼-모노의 동기인 대벌레도 거의 모든 실수를 다 저질렀지만 혼-모노 쉴드에 가려졌다),따로 서술하지 않겠다.

그것은 혼-모노 맞선임인 최이병의 나를 찾는 다급한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유일병님! 자리에 앉으시면 안됩니다!"

 

나는 막 샤워를 끝내고 내 자리에 앉을생각이었으나, 그렇게 제지되었다. 

무슨 어떠한 중요한 스펙터클한 사유로 나를 제지했는지 최이병을 닦달하려는 찰나

나의 후각을 자극하는 자극적 악취로 인해 나는 일단 표정을 찌푸렸다.

자극적 악취란 어디선가 풍겨오는 똥냄새였다.

 

"혼-모노새끼가 바지에 똥쌌습니다!"

"뭐?"

"유일병님 자리에 앉아서 바지에 똥쌌습니다!" 

 

그 순간, 생활관의 인원들 모두는 내 자리에서 스사삭 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생활관은 침상형이었는데, 반대쪽 침상에 앉아있던 놈들마저 내 자리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어, 그러니까. 최이병아. 저기야. 음, 내가 지금 좀 혼란스러워서 그런데.

아, 이걸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그 씨X놈 지금 어디있어!!!!!!!!!!!!!"

"옆 생활관입니다."

 

나는 치약과 칫솔과 빗자루를 들고, 샤워를 끝낸 런닝셔츠 차림으로 옆생활관으로 달려갔다.

옆생활관에서는 소대 왕고가 코를 틀어막고 혼-모노를 갈구고 있었다.

 

"(코맹맹이소리) 아, 싀벌. 야. 미쳤어? 어? 미쳤냐고. 와, 바지에 똥을 싸? 허."

 

절대지존인 '실세들과 친한' 말년병장이 코맹맹이소리를 내며 신병을 갈구는 그 상황은

서술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희극적으로 보일수도, 비극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리고 내 경우는 둘 다였다. 

 

"제..제가.... 그...서..선임들이....이..이..이것..저것...시켜..서 시...시간이..."

"(코맹맹이 소리)똥싸러 갈 시간이 없었다고?"

"그..그렇..습..습니다."

 

나는 끼어들어야 했다.

 

"야, 혼-모노."

"이...이병! 혼!모!노!"

"니가 PX가서 사온 과자 까먹다가 내 자리에서 똥을 싸놨던데, 누가 뭘 시켜서 시간이 없었다고?"

 

혼-모노의 얼굴이 노랗게 질리며 "그..그게...그게, 그게..."라고 말을 더듬었다.

 

"(코맹맹이소리)야, 너 왕고가 갈구는데 일병 찌끄레기가 끼어들게 되어있어?"

"죄송합니다!"

"(코맹맹이소리) 됐고, 나도 돌겠으니까 니가 알아서 조져놔."

"예, 알겠습니다!"

 

혼-모노의 맞선임들이 치약과 방향제와 걸레등을 들고오는 걸 보며

말년병장은 투덜거리며 맥심을 꺼내들고 자리에 누워버렸고, 나는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조져야 할까. 나의 분노와 혼-모노의 뻔뻔함을 심판하며 동시에 내 자리를 청소할 완벽한 갈굼의 방법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나온 방법은 고전적이고 심플하지만 확실한 방식의 갈굼이었다.

일단 그새끼를 샤워실로 끌고가서 똥싼바지와 똥싼팬티를 손빨래하게 하고 똥냄새가 안 날때까지 샤워시킨 다음

우리 생활관의 인원들을 일단 옆 생활관으로 대피시키고, 혼-모노에게 칫솔을 쥐어주고 나는 치약을 들었다.

 

"생활관 전체 미씽합니다. 실시."

"ㅈ..잘못...잘못들었습니다?"

"칫솔. 들어. 내가. 치약을. 짠다. 너는. 닦는다. 오케이? 빠가야로?"

 

나와 혼-모노와 치약과 칫솔과 생활관 침상을 차례로 삿대질하며 그렇게 설명하자, 혼-모노는 알아들은것 같았다.

생활관 바닥에 칫솔질을 박박 하고있는 혼-모노 앞에 치약을 주욱 짜면서 말했다.

 

"니 바지에 똥 왜쌌냐?" 

"ㅈ...잘...잘...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는게 어딨어? 니가 바지에 똥을 지렸는데 니가 왜 이유를 몰라?"

"ㅈ..저는...중학교...때부터... 바지에...ㄸ..똥을...쌌습니다."

"어, 중학교때까지 바지에 똥을 쌌다고? 그거 참 오랫동안 쌌네. 난 유치원 이후에 바지에 똥 싸본적이.."

"ㅈ..중학교..때..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중학교 때 까지..."

 

그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아니 X발 잠깐. 너 지금 평소처럼 한국말 헷갈린거 아니지."

"주..중학교..."

"중학교 때 '부터' 바지에 똥을 쌌다고?"

"ㄱ..그렇..습..니다"

 

 

나는, 그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며 '이새낀 진짜다'라는 것을 느꼈다.

혼-모노의 분대장이 소대장을 통해, 이새낄 정신과로 보내달라는 탄원서를 넣었고

소대장은 녀석을 데리고 사단 의무대로 갔다.

결국 녀석은...

'완전 정상'판정을 받았다.

 

어처구니 없어진 나는 소대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럼 바지에 똥찌린 게 뺑끼였단 말임까?"

"아니, 그건 아니래."

"그럼 뭡니까?"

"중학교때 왕따 당하면서, 애들이 구타하잖아?

그 구타하는데, 바지에 똥을 싸면 더럽다고 피하고 안 때리니까, 그때부터 싼 게 버릇이 된 거래."

"바지에 똥싸는게 일종의 방어기제가 된 검까?"

"물리적 방어기제가 된 거지. 스컹크 같은 거야."

"스컹크는 귀엽기라도 하지 저건 뭔 쌍 턱밑에 아가미가 달려가지고..."

"의가사도 안된댄다. 뭐, 선천적으로 전두엽에 약간 문제가 있다는데 그게 또 군생활하는데 지장은 없다네?"

"아니 이빨 발치하는 새끼도 군대 안 오는데 저런 쌍똘아이가 의가사가 안 된답니까?"

"그러게 말이다."

 

그 대화를 나눌때까지만 해도, 그게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린 아직 모르고있었다.

 

5. 이..이것은..이것은...!

 

 

 

때는 바야흐로 '소드아트 온라인'이 한참 유행할 때였다.

아마 혼-모노가 우리에게 오고 나서 1개월정도가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그는 하루하루 조인트 까이는 날들을 보냈고, 나를 볼때마다 경끼를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생활관이 나와 달랐던 혼-모노는 우리쪽 생활관에 내가 있는 걸 확인하면 들어오려다가 도망치듯 문앞에서 사라졌다.

 

"유일병님, 혼-모노 또 도망쳤습니다."

"저 씌빢샊희는 30분째 몇번째야."

 

주말을 맞아, 동기와 함께 PX를 가야하는 혼-모노인데, 혼-모노의 동기는 내 옆자리고 당연 동기와 PX를 가려면 내 옆까지 와야한다.

그래서 녀석은, 우리 생활관 문 앞에 서서 동기쪽을 바라보고, 내쪽을 한 번 본 뒤에

결심한듯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풀죽은 표정을 지으며 문앞에서 사라지기를,

30분동안 5회정도 반복했다.

 

"야야, 유일병아."

"예쓰, 동상병님."

"점마 저거 애니 켜놓으면 들어올 거 같지 않냐?"

"에이, 설마 인간이 그렇게 뻔하게 움직이겠습니까?"

"PX빵?"

"콜."

 

동상병과 나는 소드아트 온라인을 켜고, 혼-모노가 다음번에 들어오는지 아닌지에 서로 슈넬치킨 두개와 음료수 한개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기에도, 소드아트온라인에도 졌다.

혼-모노의 나에 대한 공포는 소드아트 온라인에서 나오는 그 로리캐릭터(검색해보니까 이름이 유이였다)에게 정화되었고,

그는 황홀한 목소리로 "오오.. 이..이것은....이것은....!"이라는 말과 함께 황홀한 표정으로 생활관에 입성했다.

 

생활관 전체 인원들은 그 새끼의 "오오.. 이..이것은....이것은....!"이라는 대사에 혐오스런 표정으로 그쪽을 일제히 쳐다봤다.

그 대사와 목소리가 얼마나 혐오스러웠으면, 입대이후 화내는 걸 본적 없는 우리 생활관 왕고가

내가 기억도 못하는 이상한 이유를 대며 혼-모노의 조인트를 깠다.

 

6. 장남일세. 28세인데 저 모양이지.

 

"오오.. 이..이것은....이것은....!"을 외치며 들어온 혼-모노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을 혐오스런 눈길로 쳐다보는 다른 8명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보며, "오오, 카와이!"라던가 하는 말들을 조그맣게 외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쪽으로 시선을 돌려 말했다.

 

"유..유일병님은 어떤캐릭터가 제일 좋으십니까?"

 

나는 얼떨결에 "아..아스나?" 라고 대답했고,

"저..저는 유이가 제일 좋습니다...로리..로리..흐흐..."

 

참다못한 왕고가 이쪽으로 다가왔고, 혼-모노는 그대로 끌려나가 30분간 조인트를 까였다.

 

7. 대재앙

 

어느 화창한 날, 나는 위병소 경계조 조장을 서고 있었다.

부사수에는 혼-모노가 위치했고 사수에는 인원부족으로 옆소대에서 빌려온 A급 일병, 김일병이 경계 중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군트라넷으로 만화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면 되는 조장임무중이니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재앙은 일어났다.

"유일병님! 유일병님!"

혼-모노와 대화를 나누던 김일병이 나에게 달려와서 다급하게 외쳤다.

"혼-모노 똥매렵댑니다!"

"뭐? 참으라 그래."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배가 아픈게 아무래도 쌀 것 같답니다!"

"아 씌벌!"

나는 잽싸게 장구류를 걸쳐입고 나가서 혼-모노와 교대했다.

"공포탄, 대검. 내놔. 씌부럴! 믜친것아 왜 싸기 직전까지 말을 안해!"

"바..바지에..싸면 됩니다.."

 

('0')('0')

 

"아 맞다, 이런놈이었지. 야, 조장실 화장실 들어가서 해결하고 나와! 얼른, 뛰어!"

"ㅇ..알겠습니다."

혼-모노를 조장실에 보내놓고 경계를 선 지 약 10분, 놈이 나오는 걸 보고 다시 교대하여 들어갔다.

"이새끼 면회객 화장실에 개판쳐놓은건 아니겠지?"

조장실 화장실은 면회객 화장실이었기때문에, 조장들은 언제나 그곳을 깨끗하게 해둬야한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믿을수 없는 역겨운 광경과 마주했다.

"씨이...우욱! 바아아ㅏㅇ아아아아알!"

사람이 역겨운과 놀라움이 뒤섞이면 욕과 구역질과 눈물이 함께 나온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변기커버 위에 푸짐한 똥덩어리들이 얹혀있었다.

그 광경을 묘사하기는 생리적으로 힘들다.

혹시 재연해보고싶다면, 아주 걸쭉한 짜장이나 카레를 변기커버 위에 세차게 뿌려보라. 

뚜껑이 아니라 커버다. 깔고앉는 그거. 

 

"혼-모노 씌벌놈아아아아아!" 외치며 조장실에서 뛰어나온 나를 A급 김일병이 사색이 되어 맞이했다.

"유일병님! 좋됐습니다!"

"뭐가!이 이상 뭐가 좋돼! 저 씌벌놈이 화장실 변기커버에 똥을 싸놨다고 너한테 실토했냐?"

"무슨 말씀이심까?"

"뭐?"

"혼-모노 점마 바지에 똥쌌습니다!"

 

혼-모노는 이쪽을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전투복 하의의 고무링 채운 부분에서 똥색인 무언가가 흘러내리며 전투화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저새낄 좋나게 패고싶지만 똥이 묻을거 같아서 패면 안 된다는 딜레마에 빠졌던

그의 학창시절 일찐들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8. 가설들

 

우리 소대의 인원들은, 혼-모노의 바지의 똥찌림 현상을 수없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트리거를 아직 해석하지 못했다.

무슨 조건이 갖춰져야 혼-모노가 바지에 똥을 싸는가. 수십번을 보았음에도 우리는 원인을 해명하지 못하였다.

 

1. 가혹행위

의무대와 간부들의 상담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혼-모노가 중학생시절 구타당하면서 일으킨 작은 기적(똥찌림)이 방어기제가 되어 버릇처럼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는데,

실질적으로 나와 다른 선임들이 갈구거나 조인트를 깔 때 혼-모노는 바지에 똥을 지린적이 없었다.

가혹행위는 자연스레 가설에서 사라졌다.

 

2. 심적 부담감

혼-모노에게 심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지게하면 그가 바지에 똥을 지린다는 가설이 세워졌지만,

정작 그 새끼의 뺑끼로 인해 대부분의 작업과 훈련은 그 선임이나 동기가 도맡아 하고 있다.

만약 심적 부담감이 원인이라면, 그새끼는 훈련도중에 '어억! 허리가!'라며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뒤

외진에서 정상판정받고 슈넬치킨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오는 짓거리를 할 리가 없다.

 

3. 애니를 못봐서

나름 괜찮은 가설이었다. 우리는 "오오.. 이..이것은....이것은....!"사건 이후

TV시청에서 애니메이션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못보게 되었고, 매일같이 무정도시같은 3류 드라마나 보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바지에 똥을 지린것은 애니메이션 시청을 제한하기 전이었고, 이 가설은 묻혀지게 되었다.

 

4. 혼-모노의 뺑기

처음에 우리는 그가 '정신질환에 의한 의가사 제대각'을 잰다고 판단했고,

바지에 똥을 지리는것이 뺑기라 판단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진짜'였다.

 

혼-모노가 일병을 달고, 내가 물상병을 벗어날때까지 이 토론은 주-욱 이어졌지만,

결국 그의 똥찌림에 대한 모든 가설은 증명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몇개월의 과정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중대 관심병사 짬처리용 분대장이 되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길고, 끔찍하고, 답답하고, 더럽고, 배드엔딩에, 지루하기까지 하니 생략하도록 한다.

 

9. 미친소리같겠지만 전부 사실이에요.

 

나의 물상병 말, 나는 분교대에 입소했다.

미필자들을 위한 설명으로 분교대란, 분대장 교육 대대의 줄임말로서, 군생활 중 예비군의 심정을 느낄수 있는 작은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어느정도 짬이 찬 군바리들에게 전시지휘관 자격이 갖춰지게 되는 시험인데,

말이 그렇지 실질적으로 4박5일간 옆대대 아저씨들과 오손도손 놀다오는 이벤트다.

분교대에서 나는, 랜덤돌려서 불침번을 서게 되었고, 나와 함께 불침번을 서게 되는 아저씨는 옆옆 수색대대 상병 아저씨였다.

1시간 30분동안 노가리를 까기 시작한 우리는, 서로의 군생활이 얼마나 ㅈ같은지 비교하며 허세를 떨었고, 수색대대 아저씨가 어느 순간, 

 

"소대에 관심병사 있어요?"

 

라는 말을 꺼내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레 혼-모노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네. 후임중에 한명. 선임중에 두명, 옆소대에 한명 있어요."

"키야, 편하시겠네. 우리는 소대에 관심병사만 넷인데."

"어떤데요?"

"아, 말도 마요. 씌벌 지네집 안방이라니까. 내가 진짜 이등병새키가 다리 꼬고 전화하는 꼬라질 보고 있자니..."

"그걸 살려뒀어요?"

"아, 당연히 금마 위로 내 밑으로 싸그리 불러서 조졌는데, 몇일 후에 또 꼬고 있더라고."

"그래요? 아, 근데 금마도 바지에 똥싸요?"

 

옆 수색대대 아저씨의 표정은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우리소대 관심병사는 바지에 똥싸요."

"??? 뭐 신검때 바지에 똥찌린놈이에요?"

"아뇨, 부대에서 바지에 똥싸요."

"부대에서? 왜요?"

"우리가 이유를 알면 금마 괄약근을 막아보려고 했겠죠." 

"아니, 아니.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다 큰놈이 사람들 앞에서 바지에 똥을 싼다고요?"

"네."

"한번?"

"수십번."

"화장실 제한해서?"

"아뇨, 그냥. PX가다가도 싸고, 경계서다가도 싸고, 생활관에서 동기랑 떠들다가도 싸고, 나한테 암구호 전해주다가도 싸고."

"에이, 이 아저씨 구라가 심하시네."

"나도 이게 구라였으면 좋겠어요."

그 아저씨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순간, 잠깐이나마 내가 떠든 말이 전부 구라라서 내가 분교대에서 복귀했을 때

그냥 뺑기만 치고 바지에 똥을 지리지는 않는 혼-모노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줄요약: 

장애판정 받아도 부족할 정도의 혼-모노 히키코모리가 현역판정받고 군대와서 지속적으로 바지에 똥을 지리는 이야기.

 

출처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13/read/32487636? 

 

(스압)군대 혼-모노썰 | 과거 유머 게시판(2) | 루리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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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하니 떠오르는 기억

 

국민학교 2학년때 내 하루 용돈은 200원이었는데,

당시에 세상에서 햄버거가 제일 맛있었음.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버거킹이 있었는데, 버거킹에서 파는 햄버거중 제일 싼건 천원이었다.

국민학생때인데 버거킹이 어찌 동네에 있었냐면 우리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거든...

 

아무튼, 어린나이에 햄버거가 너무 먹고싶어 하루에 백원씩 꼬박꼬박 모아서 

열흘마다 고사리손 안에 동전을 넣어 떨어질라 꼬옥쥐고, 달리고 달려 버거킹에 들어갔지.

 

키보다 높은 카운터에 까치발로 낑낑거리며 백원짜리 짤그랑 내려놓고

햄버거를 받았을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었다. 내 국민학교 2학년의 낙이었으니..

 

햄버거엔 뭐 별거 없었지...

패티 한장 치즈한장 피클3~4개? 그래도 난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

떡볶이 순대 김밥보다 더 맛있었다.

 

햄버거를 받으면 자리에 앉아서 먹어야되는데 빨리 먹고 싶어

받자마자 카운터에 서서 바로 포장 뜯어 먹고있는데...

당시에 영어 공부한다고 카운터에서 알바하던 한국인 누나가

 

"혼자왔니?"

 

라고 물어봤지만

 

"네! 햄버거가 너무 맛있어요" 라고 전혀 다른말을 하니까

그 알바 누나가 많이 웃더라.

 

 

근데 그 다음부터 기적이 일어남

 

또 열흘간 모아서 햄버거 사먹으러 갔는데,

천원을 내려놓으니 감자튀김하고 콜라도 함께 쟁반에 올려져 나오더라고

 

"누나 왜 오늘은 콜라랑 감자도 나와요?" 라고 물어보니까

 

알바생 누나가

 

"오늘부터 천원에 세트로 나와"

 

어린나이였지만 그말을 듣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음...

또 빨리 먹고 싶어 바닥에 앉아 먹으려니까 누나가 카운터에서 나와

의자에 날 앉히고 여기서 먹는거란다 라고 웃으면서 말해주는데

내 시야는 알바누나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음

 

"꼬마야 오늘부터 천원에 이렇게 나오지만 이건 비밀행사라 너만 알고있어야되 알았지?"

 

라고 카운터로 돌아가기 전에 말해주는데 난 그말을 다 믿었지

당연히 콜라랑 감자튀김은 그 알바생 누나가 자신의 돈으로 사준거...

그뒤로 내가 갈때마다 늘 그렇게 세트로 줬는데... 

내가 이사가면서 차차 잊혀졌음...

 

 

지금이라도 보게되면 그때 너무 고마웠다고

비싼밥이라도 한끼 사드리고 싶다...

 

내 어린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신분이라...

 

이 글에 달린 댓글

 

배려

 

저 역시 선의를 받은 적이 있기에 글을 남깁니다.

낙성대에서 살때 낙성각이라는 중국집이 있었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저희 형제는 2살터울 남자애들입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 부모님은 맞벌이로 나가시고

밥이 떨어졌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낙성각으로 전화해서 짜장면을 외상으로 먹으라고 했었죠.

 

주문하는 방법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곱배기를 반으로 나누어서 2그릇에 주세요."

 

그렇게 배달이된 짜장면은 너무나 맛이 있어서

형제는 바닥까지 핡아 먹으며 맛을 음미했었죠

 

국민학생 2명이 먹어도 될만한 양은 곱배기를 나눈다고 될 양이 아님을 저는 다 크고 알았습니다.

 

저희 형제에게 그런 선의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다른곳에서 사업이 번창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저학년때

가족끼리 자주가던 밀면집이있었는데

어느날 혼자 밀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용돈 천원을 가지고가서

당당하게 천원인 사리라는 메뉴를 시켰는데도

아주머니는 저에게 밀면을 주셨죠

성인이 되고나서 아직도 그집에 갑니다.

 

 

여누파파

저도 별로 안친한 분인데 국민학교 다닐적에 

매일 아침마다 등교길에 만나서 요구르트를 주셨던 분이 떠오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연일리는 없고 저와 마주치는 길에서 출근길마다 잠시 기다려주신게 아닐까 싶네요.

따뜻한 기억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익명2901

어릴 때 이사를 간지 얼마안되서 지리를 잘 모를 때..

엉뚱한 버스를 타서 첨보는 곳에서 내렸던 적이 있어요.

주머니에 한푼도 없고..할수없지 탔던 버스 반대로 걸어가면 집이 나올거야 하고 무작정 걸었어요

길가다 갈림길이 나오면 그 버스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다시 가고..그런데 해는 지고..

걷다지쳤는데도 계속 모르는 동네라 어느순간 엉엉 울어버렸어요.

마침 근처에 슈퍼에서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왜 울고있냐고..

꺽꺽거리면서 얘기했더니 동전을 쥐어주시면서 그럼 버스타고 가라고..

돈을 주실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놀랬던게 기억나요.

고맙습니다 꼭 갚을께요 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올 수 있었어요.

(근데 그 따라 걷던 버스도 틀린버스였던게 함정..두번 탈만큼 주셔서 다행히 동네근처로 올수있었어요)

 

다시 그 슈퍼를 찾아가봤지만 그 번호버스를 타고 아무리가도 찾을수가 없었어요...어려서 기억을 잘 못했나봐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고맙고..꼭 드리고싶었는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얼굴도 가게도 희미하지만..

그 아주머니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길 기원하고...

저도 그렇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살고있어요.

본받아서 나도 베푼 선의가 누군가에게 도움이되고 그사람이 또 다른사람을 돕고..하는 선순환이 될거라고 믿어요. 저부터가 그러니까요.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491228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491228

 

www.todayhum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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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근무중인 공항 노동자입니다.

 

보통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는 

 

공항 - 세관? 면세? 400$? 을 먼저 생각하지만

 

공항에는 크게 CIQ

 

C - 세관

I - 출입국

Q - 검역 이라는 3개의 기관이 상주하는데요

 

.... 모르시겠죠......

 

그냥 여권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저희부처가 존재감이 없죠.....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무서운 사람입니다, 입국불허도 시키죠)

 

쨋든 각설하고 출입국 관련 꿀팁을 알려드리고자 왔습니다.

 

1. 여권 커버는 벗겨서주세요

 

출국/입국 공통사항이에요

 

저도 여권케이스를 쓰는데요

 

심사할때만은 여권 케이스를 벗겨서 주세요

 

저희가 여권을 받으면 스캐너에 여권을 읽혀 

 

바코드와 사진등을 스캔및 확인하고 시스템상으로 

 

전산저장하도록 되어있습니다.(그래서 출입국기록증명서도 발급하지요)

 

 

그런데 ... 얇은건 상관없는데

 

루X비똥. 구ㅉ. 그외 다수 두툼한

 

방화 대홍수 계엄령선포 대화재 기근 이상기후 방사능유츌 토네이도 등에도 안전하게

 

내 여권을 보호해 줄 것 같은 여권케이스들은 스캐너에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꼭꼭 여권과 잘 끼워져 있어서 잘빠지지도 않아요

 

 

이거 벗기는데 꽤나 시간이 걸립니다 T^T 빠른심사를 위해 

 

여권 케이스는 벗겨서 주세요

 

2. 한국인 전용 심사부스가 있습니다.

 

한국인과 외국인은 심사체계가 달라요.

 

외국인의 경우에는

 

1.여권을 받고 인적면을육안스캔 후 현재 얼굴과 여권 사진일치여부 판단

 

2.입국신고서 확인

 

3.여권스캔

 

4.규제자 일치여부 확인

 

5.지문등록

 

6.안면등록 + 간단한 인터뷰(입국 목적등 확인)

 

7.비자의 종류와 무사증 국가에 따른 체류기간 부여 or 재심인계

 

이지만

 

 

내국인의 경우에는

 

1.인적면 확인 및 여권사진과 일치여부 확인

 

2.규제자 일치여부 확인

 

3.안녕히 가세요

 

입니다.

 

 

훨씬 간단하죠?

 

 

그러니 외국인 전용 부스에 줄이 짧다고 거기서 기다리면

 

더 늦어 같이오신 분들께 등짝스메쉬를 맞을 수 있습니다.

 

한국인 전용 심사대를 이용하세요 ㅎ

 

 

3. 자동출입국심사대

 

제가 이 글을 쓰게된 이유이기도 한데요

 

꽤나 생소한 이름입니다.

 

 

"자동출입국심사대" 라는게 있는데요

 

여러분이 입 출국시 입/출국 심사를 기다리며

 

끝없는 줄을 설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줄을 서 있다보면

 

다녀와서 피곤한데 어떤 누군가가 나를 줄을 세우는가

 

외국나가는게 이렇게 힘든건가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헤어진 옛여친은 잘 지내고 있을까

 

옆에 서있는 여자 이쁘다

 

안생겨요

 

등의 공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사실 줄서서 기다리는게 굉장히 짜증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법무부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커피가 다 나오기도전에 자판기에 손을 넣고 

 

아이스크림은 몽땅먹고 머리가 부서지듯이 아프고

 

컵라면 물넣고 3분을 기다리지 못하는

 

쾌속민족 한국인들을 위해

 

공돌이를 갈아넣어 엔지니어와 협업하여 자동출입국 심사대를 도입했는데요

 

 

 

지문과 안면을 등록하면 줄설필요 없이 기계가 심사를 하는 기계를 도입했습니다.

 

물론 사용방법도 어렵지 않고요

 

1. 스캐너에 여권을 넣는다

 

2.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3. 검지손가락을 지문인식기에 올린다

 

4. 카메라를 본다

 

5. 안녕히가세요

 

입니다.ㅎ 신청하는곳은 구글에서 자동출입국심사를 검색하세요(각 국제공항에 있습니다)

 

4. 자주묻는 질문

 

 

1. 내국인도 입국신고서 쓰나요?

 

- 우리집 올 때 우리집에 왜 오는지 안씁니다

 

 

2. 내국인은 입국도장 왜 안찍어주나요?

 

- 우리집올때 초인종 안 누르고 들어갑니다

 

 

3. 왜 심사관들은 수염도 안깎고 매무새가 그런가요?

 

- 분명 새벽에 나올때는 단정했는데... 밤되니까 수염도 자라고 옷도 엉망이 되네요

 

   저희공항은 첫비행기가 06시 마지막 비행기가 09시 40분입니다 사람이 좀 썩어요

 

 

 

 

4 왜 못생겼나요?

 

- 제조사(주식회사 어머니, 주식회사 아버지)는 생산품의 하자책임이 없으시다는 입장이고

 

사후 유상AS를 받으라는 입장입니다. 이점 양해부탁드립니다.

 

 

5. 되가 맞나요 돼가 맞나요

 

- 그 자리에 "하"가들어가서 말이되면 "되" "해"가들어가서 말이들어가면 "돼"입니다

ex) "너 오늘 출국 O?" 일때 "너 오늘 출국 하?" 보다는 "너 오늘 출국 해?"가 맞기때문에 "돼"가 맞습니다

 

 

6. 왜 이렇게 불친절 하나요. 인상만 쓰고있고

 

-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불편한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어떠한 이유도 없이 저희 직원의 잘못입니다.

 

항상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업무자체가 나쁜사람을 거르는 일이다 보니 무언가 얼굴이 변하게 되더라고요........ (작은목소리)

 

긴 글 읽어주셔서 갑사합니다 ㅎ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819029&s_no=819029&kind=todaybest&ask_time=1389603823&page=1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819029&s_no=819029&kind=todaybest&ask_time=1389603823&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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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해 구 경부고속도로의 황간 ~ 옥천구간 일부를 차를 통해 둘러보고 왔습니다.

 

1970년대 세워진 초창기 경부고속도로 구간이며 1999 ~ 2000년 선형개량 및 확장등으로 폐쇠되기 직전까지

 

대한민국의 대동맥 역활을 충실히 해온 구간들이지요.

 

그 중에 일부 구간을 사진으로 담아봤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입니다.

 

경치가 꽤 좋기로 유명한 휴게소 이고, 휴게소를 통해 바로 옆에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휴게소 이기도 하구요.

 

원래는 1970년대 경부고속 건설 당시 대전구간을 담당하던 현대건설 직원의 숙소부지 였다가

 

70년 8월에 금강 유원지로 건설한게 그 시초

 

1970년대 건설되어 추풍령 휴게소 다음으로 2번째 고속도로 휴게소 였으며 

 

추풍령 다음으로 제일 오래된 고속도로 휴게소 입니다.

 

 

사진상에 보이는 첫 번째 다리가 선형개량하기 전의 구 경부고속도로

 

맨 뒤에 어렴풋이 보이는게 지금 쓰이는 본선입니다.

 

 

옛 금강휴게소

 

2003년에 선형개량을 함에 따라 고속도로 램프 자체가 올라가면서

 

휴게소도 지금의 모습으로 탈 바꿈...

 

 

그래서 구 도로 타고 다리 건너다 보면 지금 휴게소랑 높이가 안맞습니다.

 

 

금강휴게소 구간 옛 선형

 

바로 옆에 현 본선이 지나갑니다.

 

 

 

금강휴게소로 진입한 뒤 금강 톨게이트 이용해서 나오시면 다리 밑으로 지나갈겁니다.

 

거기서 삼거리가 나오면 바로 우회전 해서 올라오시면 바로 구 경부선으로 올 수 있습니다.

 

구간 구간 집들의 접속 도로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차량이 들어갈 수가 있더라구요. 

 

 

하행선 방향으로 계속 올라오다 보면 당재육교를 지나고

 

옥천터널이라 적힌 구간이 나옵니다.

 

여기가 옛 경부고속 당재터널

 

 

경부선 공사당시 최고의 난 코스 구간이였는데

 

지금은 하행만 왕복 2차선 국도이고, 상행은 폐쇠

 

 

이건 70년대 당시 모습

 

지금도 잡초나 나무 빼면 똑같습니다.

 

 

거기서 계속 올라오면 지금의 본선이랑 합류하게 됩니다.

 

더 이상은 못가더군요. 마을로 이어지는 농로 같은것만 있습니다.

 

중앙분리대 바로 옆이 하행선, 사진찍은곳이 상행선

 

가로등 있는곳이 지금 본선입니다.

 

 

이렇게 옛 고속도로 간이 버스 정류장도 있군요.

 

하행은 여기 이상으로는 못찾겠지만, 아마 없을겁니다.

 

추풍령 지나다보면 또 터널 뚫린 구선 폐도 하나가 더 있으나 거긴 경부선 철도가 그쪽으로 뚫리고

 

도로에 태양열판을 설치해놔서 흔적만 보이고 차로는 못 드갑니다.

 

 

이제 상행쪽으로 오면은,,,

 

 

 

 

금강휴게소에서 상행쪽으로 오면 이렇게 중앙분리대를 중심으로

 

콘크리트 타설구간은 폐도 및 어르신들의 산책코스로 ㄷㄷㄷ

 

아스팔트 구간은 국도로 쓰고 있는데

 

확실히 고속도로라 그런가 국도 주행에서도 곡률이 좋은편이라 안정적인 주행은 가능하더군요.

 

 

 

이렇게 차로도 들어가집니다.

 

듬성듬성 집들이 바로 도로 옆에 있어서 출입로로 이용 중이더군요.

 

 

상행도 이렇게 올라가다보면

 

지금의 본선과 만납니다. 

 

소도교 254KM 건설구간,,

 

 

 

사진 한번 찰칵;;

 

저 멀리 어르신들이 고속도로? 에서 산책 중 입니다 ㄷㄷ

 

전 고속도로? 에서 사진찍는 중 ㄷㄷㄷㄷ

 

 

 

나머지 구간도 더 찾고 싶었는데 날이 저물어버린 지라 찾는건 포기했습니다.

 

사진상의 노선들은 99 ~ 00년 현 경부고속이 선형개량 및 확장을 시행하면서 그 이후로 폐도되어

 

사용은 안하고 있는데, 70년대의 콘크리트 포장이라던가를 도로 설계 및 가드레일 같은걸 느껴볼 수 있었고,

 

확실히 지금과는 다르게 강변을 끼고 산을 타고 오르고 곡선구간이 많아서 약간 

 

옛 88고속도로를 상당히 풀어놓은 완화된 도로 같습니다 ㄷㄷ

 

 

고속도로 옆에 그 울창한 큰나무? 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옛 고속도로의 모습도 어렴풋이 남아있구요.

 

표지판이나 그런 것들은 철거 되어 있지만, 가로등이나 가드레일등이 딱봐도 나 오래된거다 티 내고 있,,,,

 

 

느긋이 지나가다 보면 물에 쓸려내려온 토사들과, 잡초등으로 도로가 지저분하게 방치중이고

 

농기계들도 널려있고, 일부 구간은 아예 흔적도 안보이게 매꾸고 있습니다.

 

구 도로를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은 금강휴게소를 통해 나오면 바로 이용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보시는것도 나쁘진 않을 수도 있겠네요 ㅎ

 

 

[사진을 클릭 하시면 고화질로 보실수 있습니다.]

 

[사진은 모두 폐도 구간에서 찍은것이라 통행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으며, 지금은 폐도처리된 구간이라

 

차가 들어가지긴 해도, 집 몇채가 있어서 차가 오는거 빼면 다니지 않는다는거 참고 하시면 됩니다]

 

출처

https://bobaedream.co.kr/view?code=best&No=61423 

 

[스압] 구 경부고속도로 탐험기 | 보배드림 베스트글

주말을 이용해 구 경부고속도로의 황간 ~ 옥천구간 일부를 차를 통해 둘러보고 왔습니다.1970년대 세워진 초창기 경부고속도로 구간이며 1999 ~ 2000년 선형개량 및 확장등으로

www.bobaedre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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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으로 함께 여행간 친구가 찍어준 작성자

 

이런 말을 하기 떳떳하진 않지만, 난 잘 사는 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게 큰 관심이 없는지라 돈 줄만큼 주고 알아서 살라는 방침이다.

 

게임에 현질도 질만큼 지르고

먹을 것도 된탕 먹어본지라 삶에서 허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애초에 난 그 당시, 사교성이 정말 꽝인지라 혼자있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몇 없는 친구와 노는 것 대신 나홀로 세계여행을 하는 것을 즐겼다.

 

맨 처음 갔었던 나라가 가나였는데, 나도 그때 내가 뭔 생각을 하고 가나를 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가나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먹고 싶었었다.

 

결국 가나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입에 댄 것은 카카오 열매였다.

 

노란색 열매를 열자 속에 흰둥이들이 나왔는데, 마치 마쉬멜로같기도 했다.

 

맨처음 카카오 열매라길래 ‘오오 카카오열매’ 이러면서 받아먹었는데, 씹자마자 괴상한 맛과 함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떫은 맛에 당장 입안에 든 것을 밷어내었다.

 

 

침이 요오드용액 투하한 것 마냥 보라색이다.

 

찡그려진 얼굴로 카카오를 건넨 현지인을 쳐다보자 박장대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거울을 보라고 하길래, 거울을 봤더니 입가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입도 벌려보니 입 안이 보라색이다.

 

이게 정말로 초콜릿의 원료인가 싶어서 벙쪄있던 내게 현지인이 사탕처럼 흰색 과육만 빨아먹어야 한다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확실히 그 부분만은 새콤달콤하긴 했다. 

 

근데 아나나스보단 당도가 덜해서 가나에 있는 내내 아나나스만 먹어댔다. 결국 입이 헐어서 한동안 고생한건 안 자랑이다.

 

덤으로 장티푸스와 말라리아도 걸려서 죽는 줄 알았다. 진심 머리 쪼개지는 줄.

 

가나의 어린이들은 은근히 순수한 면이 있다.

 

가나에서 한국의 데이터는 쓸수 없기에, 시장에 나가 데이터 칩을 구매하려고 둘러보니,

 

어린 꼬마들이 플라스틱 바케스에 비닐로 포장된 물을 팔고있던 아이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아마도, 물을 사주라는 의미이겠지, 그런데 나는 가나에서 2주간 물갈이를 한다고 꽤 고생했었기 때문에, 물을 사먹는게 꺼려졌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거부의 제스쳐를 취하자 꼬꼬마가 요란한 몸짓을 하다가 “쿵푸-!”이러길래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도 호구인지, 웃음값으로 그 비닐팩 물봉지를 사주었다.

 

은근히 비싼값을 부르길래 뻥카치지 말라고 꿀밤한대 먹인건 안 자랑이다.

 

비닐팩 물봉지를 받아들자 그 비닐에 얼음이 담긴 물을 마시는 펭귄이 야자수가 있는 사막에서 쉬고있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이 어째서인지 뇌리에 박혀버렸다.

그리고 언젠가 사막에 가고 말겠다는 괴랄한 결심을 하고 만 것이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샤각거리는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한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었다.

 

그래서, 좀 더 돈이 모인후에, 제대로 사막투어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사막에서 살아남기라는 만화책을 본 터라, 사막에 대해선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아니 들들 볶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냥 ‘나 사막갈래, 돈 줘.’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많은 용돈을 받은 나는 사막을 갈 준비를 시작했다.

 

내 계획은 사헬 사막을 횡단하는, 실로 야심차기 그지없는 계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정신 나갔던 게, 사막에 강도가 있다는 것도 모른채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안내해주던 현지인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지도에 그려줘 강도를 만나지 않았던 것임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어쨌든, 사막에 갈 준비물은 간단하다.

 

나침반과, 반팔, 긴팔, 바람막이, LED랜턴, 캠프파이어용 장작, 세면도구, GPS, 라디오식 구조요청기기, 신호탄, 물, 그리고 각종 음식들.

 

사막을 횡단하는데, 이렇게 많은 것을 들고갈 필요가 있나싶겠지만, 나는 사막을 횡단한다고 했지 걸어서 횡단한다고 하진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현지에서 랜트한 지프에 싣고 사막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정말로 놀랐던게, 사막에서 도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사막의 모래가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조금 가다가 어느새 사라져 상당히 놀랐었다.

 

그리고 나는 청룡열차를 맞이했다.

 

사막의 모래는 바람에 날려 쌓이기 때문에 모래언덕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모래언덕을 지프로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청룡열차마냥 부유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감각에 맛이들려서 한동한 모래언덕에서 청룡열차를 타고 놀았다.

 

과감하게 좌우로 경사진 곳에 달려들어 지프가 뒤집혀질 뻔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리고 나는 트렁크를 열고 장작을 꺼내기 시작했다.

 

장작을 아마추어처럼 쌓아놓고 불을지르자 타오르기 시작해, 불판을 올린뒤,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술은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가져오지 않았기에, 정말 아쉬웠었다.

 

밤하늘의 별들과 캠프파이어, 그리고 고기라니, 이 상황보다 술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늘에 걸려있는 별들에게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한참을 바라본 것 같아, 고기가 다 타버렸겠다 싶어 내려다보니, 아직도 안 익었기에 당황스러웠었다.

 

그렇게 첫날은 여유롭게 지나갔다.

 

둘째날 아침햇살에 눈이부셔서 일어나게 되었다.

 

쨍쨍 햇살이 내리쬐는 바람에, 에어컨으로 어느정도 낮춰두었던 차 내부의 공기가 벌써 미지근 해서 다시 켜고, 세면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날, 내가 고작 세수를 하는데 물을 써버렸다는 것에 대해 정말 크게 후회하게 되었다.

 

아침밥은 시리얼로 대충 때우고 다시 지프를 몰아 사막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심때 쯤에, 지프가 덜덜덜 거리는 괴상한 소리를 내어 잠깐 세웠는데, 그 사이에 퍼져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프에서 내린 후, 일단 보닛을 열어보았다.

 

애초에 차 부품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데 왜 보닛을 열어보았는지는 의문이다. 그만큼 당혹스러웠고,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저녁이 되어 해가 저물 때 까지 문제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전기는 돌아가기에, 에어컨은 가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나는 챙겨온 물품중, 라디오식 구조요청기기를 꺼내었고, GPS를 켜서 구조요청을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갑자기 퍼져버린 지프에게 크게 실망감을 느꼈다,

 

내 여행을 망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리며, 저녁준비를 했다. 저녁은 어제처럼 바비큐였는데, 어제보다 맛이 덜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선, 차양막을 치고, 에어컨을 틀면서 늘어지게 잠만잤다.

 

이 땡볕에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 하며, 골판지 상자로 스노우보딩 하듯, 모래언덕 위에서 타고 놀았다.

물론, 발을 고정하는 끈같은 것 없이 타고내려가다보니 굴러가는 것은 다반사라, 결국 썰매타기로 바뀌어 버렸다.

 

사막여행 출발후, 4일이 지났다.

 

아직도 구조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하긴,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데, 바로 올 수 있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5일이 지나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구조요청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 구조요청기기를 꺼내 GPS를 찍어 보내었다.

그러다가, 에어컨 바람이 그쳐버렸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이다.

 

 

이유인즉, 배터리의 과열로 인해 배터리 수명이 단축된 탓이었다.

 

친구에게서 에어컨은 1시간틀고, 1시간 쉬어야한다고 들었는데, 그걸 까먹은 탓이다.

 

배터리는 차 내에 여분으로 하나 더 있었기에, 교체를 해야했다. 그래야 내가 이 땡볕에 말라죽지 않을 테니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터리를 겨우 교체하고 에어컨 바람이 다시 흘러나오자 크게 안심이되었다.

 

이번에는 손목시계에 알람을 맞추어 에어컨 옆에 놔두었다.

 

저녁에는 남은 음식들과, 물을 꺼내었다. 혹시나 구조가 늦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서 나눌 생각이었다.

 

그렇게 1주일치 식량과 물이 배분되었다. 이 1주일 안에는 구조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날 부터, 세면을 그만두었다.

 

1주일이 지났을 때,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에너지의 낭비를 막고자 했다. 

 

그러자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쏟아져 내려왔다.

 

내가 왜 사막을 오려고 했을까 부터 시작한 생각은 가나에서 물을 팔던 꼬맹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르렀고,

 

결국에는 아버지를 원망하기까지 이르렀다.

 

애초에 내게 관심이 없는지라, 내게 있어서 걸어다니는 ATM기기로 취급되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면 사막에 가려는 아들을 말려야 할 것이 아니냐며 분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잠이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햇살이 아닌, 배고픔으로 잠에서 꺠어났다.

 

맨 처음에는 배가 아픈줄 알았다. 배가 먹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바싹 말라버린 내 입은 물을 요구했다.

 

그떄 나는 내가 남긴 모든 음식과, 물을 떠올렸다.

 

맛없다 싶으면 남겨버린 음식들, 심지어는 가나에서의 카카오까지 기억에서 스쳐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다리를 봤다.

 

양말을 벗기자, 역마살 탓에 굳은살이 꽤나 박혀있는 발이 보였다.

 

주저없이 손톱으로 그 굳은살을 뜯어내어 입안으로 넣어댔다.

 

더럽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다. 하지만, 배를 달랠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발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뜯어먹자 그만두었고, 이내, 생전 뜯어본적 없는 손톱을 이로뜯어 삼켰다.

 

이날 나는 간접적으로 인육을 체험한 셈이다.

 

하지만, 목은 아직도 말라있었다.

 

다음날이 되자, 입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목이 매우 따가웠다.

본능적으로 침을 삼키기 위해 목울대를 움직였지만,

 

내 신체는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 침따위를 억제한지 오래였기에, 의미없는 행동에 불과했었고,

 

말라진 목에 목울대가 지나가니 걸려버려서, 숨을 못 쉴 뻔 하기도 했다.

 

물물물, 끊임없이 물을 원했다.

 

문득, 자동차에는 냉각수가 있다는 걸 떠올렸고, 지프에서 내려 보닛을 열었다.

냉각수는 쉽게 찾았지만, 아무리 봐도 먹을수 없어보이는 노란 색을 띄고 있어, 다시 보닛을 닫고 지프안으로 파고들었다.

 

에어컨은 아직 흘러나오기에, 이 에어컨으로 물을 만들순 없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고작 얻을 수 있는 것은 결로현상으로 인해 에어컨 날개에 조금씩 생성되는 이슬만이 혓바닥을 축여주었다.

 

저녁이 되자, 에어컨을 껐는데, 그때부터 격렬하게 내 목이 물을 원하기 시작해서 한동안 정신이 나가있었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이르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놈이라 염라대왕이 꽤나 골머리를 썩일 것 같았다.

아니, 불효라는 죄가 있으니 지옥을 가게 될까? 그건 또 아니다. 가나의 어린이에게 물을 사주었으니 말이다. 아, 물! 또 생각해버렸다!

 

내일은 구조대가 올까?

내일동안 나는 살 수 있을까?

 

 

오만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어느것 하나 쉽게 답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신을 부르짖었다.

 

살려달라고 안했다. 오만한 나는 신에게마저 살리라고 명령했다.

 

“신아! 날 살려라! 살리라고 말했다!” 이런식으로 몇분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다가, 살리라는 말은 점차 살려달라는 소리로 바뀌었고, 이내 죽이지 말아주세요라는 비굴한 목소리도 낼 수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없이 적막만 흘러갔다.

 

나는 늘 혼자있는 것을 좋아했고, 조용한 것을 좋아했다. 그런대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런 소리가 없으니.

 

결국 나는 지지직-하고 소리를 내는 라디오 구조요청기기를 다시 꺼내들었고, 의미없이 그냥 틀기만 했다.

적막이 이렇게나 싫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왜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없었을까. 왜 이렇게 사교성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오만’스러운가.

 

그 죽음과 삶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내가 겨우 오만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오만했기에, 아버지의 시선을 바라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걸 알자 너무나도 후회가 되었다.

사과하고 싶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죽어버리면 말짱 도로묵 아니던가.

 

뭐라도 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 했지만, 뭘 할수도 없는 처지였다.

 

다음날이 되자, 말로만 듣던 신기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햇살이 너무 강렬한 탓도 있을 것이다.

파란 하늘에 떠있는 오아시스 하나, 땅에 있는 오아시스가 하나.

 

분명히 머릿속으론 환상이라고, 신기루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는 것을 머리가 막지는 못했다.

나는 따가운 햇살을 막기 위해 외투를 두르고 지프에서 내렸다.

굳은살이 벗겨진 발바닥이 신발 깔창으로부터 느끼는 사막의 열기는 꽤나 아렸다.

 

그리고 나는 신기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막을 걸으면서 생각되어졌다.

 

어차피 차 안에만 계속 있는다면,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거, 한줄기 희망에 걸어보는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며 합리화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멀어지는 것이 오아시스가 아니던가.

그런데 왜 더 선명해지고, 왜 더 커지는가.

 

그걸 깨닫자 마자 발걸음이 부산스러워졌다.

 

물물물 머릿속에서 오로지 물이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모래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대지가 점차 단단해졌다. 그리고 색이 어두워져갔다.

 

믈이 눈 앞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서 나는 코와 입으로 마음껏 물을 마셔댔다.

 

차가울줄 알았던 오아시스의 물은 사막의 열기로 꽤 뜨거웠었다.

그 결과, 내 얼굴이 벌개져 따끔따끔거렸고, 입천장은 다 벗겨져 버렸다.

그래도 나는 눈물 흘리면서 누군가에게 감사하다고 중얼거리며 웃음지었다.

 

그거 아는가? 오아시스는 살짝 짠맛이 난다.

 

다음날이 되자, 수색대는 내 지프에 이르렀고, 없어진 나를 찾다가 주변에 오아시스가 있는 것을 알고 그쪽으로 찾아와 날 구조했다.

 

정말로 웃긴 것은, 라디오 구조요청기기를 계속 틀어놔야 구조대가 도착하는 것인데,

나는 계속 띄엄띄엄 보낸바람에 구조대가 오지 않은 것이라고 들었다.

 

이건 매뉴얼에 써 있었는데, 오만한 나는 그걸 들여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자업자득이란 것이다.

 

 

마을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씻고, 음식과 물을 먹을줄 알았는데, 수액부터 맞으라 해서 몇시간동안 꼼짝을 못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나는 바로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에게 무작정 용서를 빌었다.

무얼 잘못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부터 벌써 6년이다.

 

전보다는 아버지와 친해져 같이 골프를 치러가기도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방랑벽을 버리지 못하고 세계를 싸돌아다니는 중이고,

 

사막은 다시는 여행하고 싶지 않아졌다.

 

지금 나는 필리핀을 여행중이다.

 

물론 혼자서가 아니라, 내 친구와 함꼐.

 

이상이다. 읽느라 수고가 많았다. 

 

-요약가져오라 해서 요약올림

 

1. 아프리카 가나갔다가 사막을 떠올려서 사막에 가게됨

 

2. 뭔 깡이었는지 사막을 지프로 횡단하려고 함

 

3. 사막 한가운데서 퍼짐

 

4. 사막에서 조난당한지 10일이 걸려 구조됨

 

5. 그 사이의 이야기임

 

 

소설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차가 퍼졌는데 에어컨이 돌아?

에어컨 날개?  결로?

 

혹시라도 시동은 걸 리는 상황이라 에어컨을 켰다 해도

발전기가 일하는데 배터리가 과열?

 

거기다 그렇게 에어컨 돌릴 연료는 어디서 구하고?

 

1. 사막 횡단시 가솔린 잔뜩 싣고 갑니다

2. 차 퍼진다는 게 도심에선 엔진 이야기지만 사막에선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3. 엔진 돌면 당연히 에어컨은 나옵니다

4. 배터리 과열은 모르겠고 사막 모래에 염분이 많고 온도가 높아서 접촉 단자 쪽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저도 시동이 안 걸려서 보니깐 배터리 접촉부에 녹색물??같은게 결정화되어 있더라구요 배터리 교체하니깐 시동 잘 걸렸습니다

5. 40-50도 사막에서 창문 조금 열고 에어컨 키면 결로 현상 엄청 발생합니다

 

출처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261/read/30559432

 

사막으로 나 홀로 여행갔다가 죽을뻔한 썰(많이 김 주의) | 해외여행 / 유학 이야기 게시판 | 루리

이런 말을 하기 떳떳하진 않지만, 난 태생이 금수저다.그런데 아버지가 내게 큰 관심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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