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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뻘글 입니다. 그냥 재미로 봐주세요.

제 나이 30대 초반에 10억이 조금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나쁜것 아니고 창업한 다음 제가 만든 서비스가 다른곳에 팔리면서 저는 현금을 번 동시에 백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현금 없어요 ㅎㅎㅎ)

그냥 새벽에 잠도 안오고 해서 써봅니다.

제가 진짜 거지같이 살았던 사람으로.. 부자가 되기를 너무 간절히 바랬던 사람으로써.. 그 후 이야기들을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1. 처음엔 돈이 참 사이버 머니 같다.

통장에 그 큰 금액이 찍혔을 때에는 진짜 게임 머니가 찍힌 기분입니다. 이걸로 뭘 해야지 뭘 할 수 있다 이런 생각보다

그냥 공이 엄청 많구나.. 근데 기분은 확실히 좋습니다. 내가 뭔가 해낸것 같고,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현금으로 다 뽑아서 보면 좀 실감이 나겠지만 그런 미친짓은 하지 못합니다.

 

2. 거지 근성 쉽게 안바뀐다. (이건 스타일이겠지만.)

저는 돈 벌고 처음 큰돈 쓴게 3500만원 정도 국산 차 샀습니다. (심지어 레이 사려고 했습니다..ㅋㅋㅋㅋ)

뚜벅이로 살았었기 때문에 그냥 잘 굴러가는 국산차도 충분해 보였어요. 그래서 국산차 샀고 (1년 지나고는 외제차 샀어요)

음식 돈 계산안하며 먹을 줄 알았는데.. 다 합니다. 그냥 좀 더 비싼걸 마음 안먹고 마음 덜먹고 먹는다 정도.

그러고 한 2년 즘 지난 지금.. 씀씀이는 예전보다 확실히 커지긴 했지만 아끼는 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자기 타고난 근성이겠지만 제 케이스는 100억 정도 있어도 펑펑 쓸것 같지 않네요.

 

 

3. 돈 벌고 내가 한것들..

먼저 차는 뽑아야지 해서 차 샀어요 -> 국산차(3500만)

아 거지같은집 살았으니 이제 럭셔리한 집 살고 싶다 해서 집 이사 했어요 -> 전세집 (6억 몇천)

차 1년 타니 오픈카에 대한 갈증 생겨서 그냥 중고 외제 오픈카 하나 샀어요 -> 외제차(6~7천)

주식 조금 넣었어요 -> 주식 (1억)

그리고 나머지는 해외여행도 몇군데 갔고, 클럽가서 테이블잡고도 여러번 놀아봤습니다.

그 말고는 큰 돈 쓴건 없네요. (남은 현금도 얼마 없지만.)

 

4. 진짜 여자가 달라지나...궁금했다.

돈 많은 남자가 왜 이쁜 여자랑 만날 수 있는건지 몸소 체험해보지 못했으니 잘 몰랐어요.

그게 "돈 많으니 여자가 붙는다!" 이런 개념과는 다릅니다. 이런 된장녀도 있지만 일반적인 여자를 만나는데도

돈이라는게 도움이 충분히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 이 많다는 것은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의 이쁜 정도를 어느정도 올려줍니다.

솔직히 자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정도 여자 못만납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연예인처럼 이쁜여자 절대 못만납니다.

근데 돈이 있으면 자기가 만날 수 있는 범위에서 상위에 속하는 여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첫 만남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데이트에서도 '돈' 이라는게 참 유용 합니다.

첫만남에는 '차' 가 남자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물건이 되기 때문에 "이남자 큰 느낌 없어도 좀 더 만나봐야겠다"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데이트 할 때, 돈 때문에 못했거나 덜 재미있는 것을 선택했을텐데 그렇지 않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결과" 를 목적으로

좋아하는 여자와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돈 없으면 추억을 못 남기는건 아니지만, 확실히 도움 됩니다.

돈 때문에 여자가 꼬이면 다 된장녀다. 이건 반쯤은 틀린말 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 많다고 매력 없던 사람이 매력이 생기는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감 일부가 상승하면서 상대방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힘은 있습니다. 나비효과처럼요. (물론 돈 있어도 안되는 사람도 있겠음)

 

5. 로또 당첨되도 그냥 평민이다.

요즘 로또 1등 당첨되면 10억 정도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중간하게 10억 정도 있으면 평생 먹고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백수로 지내기 어중간 합니다.

아싸리 신나게 인생 즐기려면 최소 50억은 넘어야 될것 같습니다.(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뭐 건물 사기도 애매하고, 작은 건물이라도 사자니 전세집 빼야하고.. ㅎㅎㅎ;;; 그냥 저냥 넉넉한 평민의 삶입니다.

 

6,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진짜 돈 50억 넘고 100억 넘으면 저도 그정돈 안벌어봐서 모르겠지만 놀만할것 같습니다.

10억 정도는 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별 걱정 없이 놀지만, 일을 안하니까 진짜 사람이 힘이 빠지고 의욕이 없어집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여행도 다니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는데 1년 정도 지나니 진짜 무기력 해 집니다.

그렇다고 돈 있는데 절대 돈 조금 받으면서 일 못합니다.

꿈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꿈이 크지 않다면 그냥 원룸 사서 그거 신경 쓰면서 살면 됩니다.

아무튼 일을 안하면 사람이 조금 폐인이 됩니다. (물론 아닌사람이 있을수도)

 

 

7. 관계 하는 사람이 좀 달라진다.

돈 없을때에는 돈 많은 사람들(뭐 사업하거나 돈 잘버는 그런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근데 관계 하게 되는 사람이 자연스레 제 수준과 비슷해 집니다. (수준이라고 해서 급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씀씀이나 이런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때 못보던 것들을 보게 될 때도 있고, 그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아직 찾지못했지만)

 

8.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 진다.

처음엔 그냥 깔끔한 국산차도 몇달 만족하며 탔는데 금새 갈증이 납니다.

오픈카를 샀더니 몇달간 보고만 있어도 좋고, 타고다니면 성공한것 같고 기분이 참 좋더니 이젠 뚜껑을 열고

밖에서 사람들이 쳐다봐도 진짜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그냥 옆에 경차 탄 사람과 기분이 거의 비슷 합니다.

좋은 집도 처음엔 뷰도 좋고 집도 깔끔하고 좋았는데.. 그냥 자기한테 편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하지만 좋아보이는 것을 포기를 잘 못합니다)

모든게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지고 소중함을 잘 모르게 됩니다.

결국 가난하게 살건, 부유하게 살건, 행복의 정도는 자기가 느끼기 나름인것 같습니다.

 

9. 돈이 행복을 때때로 주기는 한다.

위에 말했듯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행복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인것은 맞는데..

저는 가난할 때 보다 부유할 때 확실히 더 행복할 수 있는 빈도가 높은건 확실한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이 행복을 직접적으로 주는 건 아니지만, 돈은 '자유'를 주고 '선택'을 할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단지 돈이 많으면 좋은 집 살고 좋은 차 타서 행복한게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을 때 가고, 내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결국 그럴 때 행복지수를 높여줍니다.

 

10. 결국 사랑

처음엔 돈으로 할 수 있는것들을 많이 했습니다. 여행, 유흥, 갖고싶은것 사기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하면 더 하고싶진 않습니다.

사람 본능인 사랑을 하고 싶어집니다. 내 배우자를 찾게 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돈도 절대 버리진 못하지만, 그 무엇보다 사랑의 힘이 큰 것을 알게 된것 같습니다.

 

11. 그러면 안되지만 사람들이 한심해 보인다.

이건 듣는사람이 기분나쁠 수 있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냥 어떤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10억이 있고, 100억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월급 몇백 받고 한달에 100만원 200만원 저금 하려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행복하지 않은 삶을 선택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다 자기 선택입니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인것도 맞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결국 다 자기 선택 입니다. 자기가 가난한것도 다 자기가 선택했던것들이 지금 자신을 만든겁니다.

노력이 성공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올바른 선택 후 노력이 성공을 가져다 줍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건 선택인데, 사람들은 생각없이 노력만 합니다.

 

 

12. 돈과 건강..

건강 중요합니다. 이 말 참 식상한데.....ㅎㅎㅎ 하면서도 식상합니다. 근데 돈보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이 건강할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돈 없을때 뷔페 위주로 밥 먹었고, 폭식을 자주 했습니다.

돈 벌고나서는 양보다 질로 바뀌었고, 건강을 좀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트에서 과일도 사고싶을 때 사고요.. 그전엔 비싸서 잘 안사먹었거든요.

 

13. 결국에는 RPG게임하고 비슷하다..

RPG게임 하면 베타때 부터 하면 지존 먹을 가능성이 있고, 인정 받을 수 있잖아요?

이왕이면 게임 생기고 초반에 운좋게 시작한 사람들은 지존 먹습니다. (부자 됩니다.)

근데 나중에 시작해도, 저렙이어도 게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렙보다 더 행복하게 게임 합니다. 고렙이면 뭐합니까 할게 없는데..

고렙은 멋있지만 저렙 몹 잡으면 재미 없습니다. 부자들은 더 큰거 대단한거 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 수준에 맞는 그냥 그걸 하는겁니다.

그렇게 부러워 할 필요 없지만, 부럽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랬습니다. 부자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결국 다 똑같다 하지만

되 봐야 압니다. 자기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지, 꼭 부자가 되어봐야 하는 사람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에 가까웠고, 그런 사람이라면 한번 해보세요. 쉽진 않을 수 있지만..

어쨌건 사는 거 별거 없습니다. 너무 힘들게 살지 마세요. 게임처럼 사세요.

돈 몇천원 몇만원 몇백만원 아낄려고 인생 낭비하고 스트레스 받고 살지 마세요. 게임이라도 그렇게 하실건가요?

인생 게임처럼 살아보세요. 사업 시도하고 실패 하면 죽나요? 사람 쉽게 안굶어죽습니다. 쫄지 마세요. 세상하고 자꾸 타협하려고 하지마세요.

게임처럼 사는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할 확률이 높고, 너무 인생 진지하게 힘들게 사는 사람은 결국 눈 감을때 패배자가 될겁니다.

인생 너무 진지하게 살지 마세요. 걱정하고 힘들게 살아봐야 여러분들한테 큰 부귀영화 없습니다. 재미있게 사세요.

 

14. 오늘......................

저 돈 벌기 전까지 오늘을 위해 산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근데 이제는 오늘을 위해 살려고 많이 노력 합니다. 아직 젊긴 하지만 그렇게만 낭비했던 제 청춘들이 아깝습니다.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고, 가장 행복해야 하는 날도 오늘 입니다.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오늘을 너무 희생하지 마세요.

이왕이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오늘을 선택하고, 그 중에도 이왕이면 미래에 도움이 되는 걸로 선택하세요.

열심히 일해서 돈 모아서 부자 되면요? 이미 여러분은 아마 늙어서 돈이 별로 필요 없을수도 있어요.

그냥 가장 젊은 오늘을 위해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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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씻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다.

"전공의"의 영어 단어가 "거주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Resident"인 이유는 말 그대로 깨끗하고 쾌적한 집이 아니라

허물처럼 벗어던진 수술복과 종류를 구분하고 싶지 않은 오물이 이리저리 튀어 있는 가운이 나뒹구는 더럽고 좁은 당직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밥, 잠, 개인 위생 중 어느 한두가지를 포기해야만 하는 사정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개인위생을 포기하게 되고 만다.

 

그렇지만 나는 잠을 자지 못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다크써클을 무릎까지 늘어트린 채

병동을 좀비처럼 배회할지언정 씻는 것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적당히 시원한 물이 정수리부터 쏟아져내리는 느낌과 향긋한 샴푸 린스 바디워시 냄새는 매일매일을 버티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직전까지 얼마나 힘들었든 간에 일단 씻고 나면 잠시라도 상쾌한 기분에 젖어 당장의 힘듦이 좀 잊혀지는 것 같기도 했다.

또한 나는 굉장히 "냄새"에 예민한 사람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어딘가 아프며 아픔으로 인해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후각 또한 예민함에서 예외일 수는 없으므로 더더욱 잘 씻고 다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오랜만의 오프에 평소 사용하던 샴푸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푹신한 내 방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근처 마트에 갔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샴푸가 이제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고, 마트 샴푸 코너에는 여러가지 샴푸의 향을 맡아볼 수 있는 테스터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적극적으로 후각을 피로하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거나 집어 맡았던 여러 가지 샴푸 향 중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냄새가 있었다.

그건 꽤 강렬하고 향긋했으며 아주 슬픈 기억이라서, 순식간에 나는 몇 년 전의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신경외과 인턴 시절의 일이다.

비오는 화요일이었고, 웬일로 정규수술이 없는 날이라 나는 중환자실 일을 마치고 인턴숙소에 올라와 단잠에 빠져 있었다.

밖은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창문 밖은 밤처럼 어두워 더더욱 잠을 자기 좋았다.

한 두시간 반쯤 잤을까, 달갑지 않은 벨소리에 잠을 깼다.

외과 컴바인한 응급 개두술이 잡혔으니 수술방에 내려와 준비하라는 치프 선생님의 전화였다.

억지로 눈꺼풀에 매달려 있는 잠을 쫓으며 내려가 보니 수술방에서는 이미 외과 수술을 마치고 배를 닫는 중이었다.

희고 부푼 배를 제외하고는 모두 푸른 수술포에 가려져 있던 환자의 차트에는 21/F, TA(교통사고)라고 쓰여 있었다.

새벽 6시, 학교에 가던 길에 차에 치였다고 했다. 

 

 

"이런 수술은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보호자가 너무나 원해서 하는 수술이야.

머리도 못 깎고 올렸으니 GS(외과) 나가면 머리 깎고 포지션 잡자."

 

나는 치프 선생님에게 컴퓨터 자리를 비켜 주고 수술실 한 구석에서 충전 중인 바리깡을 찾았다.

외과가 배를 다 닫고 수술포를 걷어내자, 스물 한 살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소생을 위해 쏟아부은 수액 때문에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환자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술모자를 벗겨내자 축축하게 젖은 검은 머리카락 한아름이 쏟아졌다.

군데군데 피가 엉켜 있는 긴 머리카락은 바리깡으로는 절대 밀 수 없었기 때문에,

막가위를 써서 최대한 두피에 붙여 짧게 잘라낸 후 남은 머리카락은 면도기와 바리깡을 이용해 미는 방법을 선택했다.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들추며 한움큼 쥐자 코끝에 샴푸 냄새가 훅 끼쳤다.

뭐가 그리 바빴길래 이 추운 겨울에 머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집을 나왔을까.

바닥에 깔아놓은 포 위로 한 무더기의 머리카락을 떨궈낸 뒤 마침내 수술이 시작됐다.

나는 세컨드 어시스트로 들어가, 오른손에 석션을 쥐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필드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두개골을 조금 잘라 끌 같이 생긴 도구로 들어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뼈가 없어진 자리로 얇은 막에 싸인 뇌가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막을 조금 자르니 뇌척수액이 말 그대로 분수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인 내게 교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인턴 선생, 석션!"

나는 정신없이 그 물줄기를 향해 석션을 갖다댔다.

두개골로 단단히 감싸진 한정적인 공간에 담겨 있던 퉁퉁 부은 뇌가 머리뼈를 제거해 압력이 낮아진 곳으로 끊임없이 탈출했다.

이 수술은 두개강내압을 낮추기 위한 수술이다. 뇌의 어느 엽 반 정도는 될 것 같은 양을 전부 석션해내고 나서야 뇌 탈출이 멈췄다.

이건 신경외과 수술 중 가장 슬프고 끔찍한 수술이야. 교수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씀하셨다.

이제야 수술 전 치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됐다. 환자의 생명 연장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환자의 문제는 머리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수술 내내 스크린 너머에서는 혈압이 계속 떨어지는지 시끄럽게 알람이 울렸고

수술을 마칠 때까지 이 환자를 세상에 붙잡아 놓으려는 마취과의 분주한 움직임이 어깨 너머로 느껴졌다. 

 

수술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세 시간이 좀 안 되는 수술을 마치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 앞에 부모로 보이는 사람 둘이 서 있었지만 나는 차마 그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침대를 끌었다.

환자를 중환자실에 데려다 놓은 뒤 수술방으로 돌아와 기구들을 정리하는데

한쪽에 급하게 수술하느라 미처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구석으로 밀어 놓은 포에 담긴 머리카락이 보였다.

치우려고 포를 집어들자 거기서는 아직도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났다.

생기 넘치는 냄새였다. 스물 한 살 여대생과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지만, 이 곳이랑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그런 냄새.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예상한 것처럼, 얼마 못 가 그 환자는 사망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래도 그날 밤은 버텨주었다는 것.

 

"죽음을 예측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 중 가장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때때로 더 이상의 치료가 환자의 생명 연장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거다.

그럴 때마다 이 직업은 냉정한 판단력을 늘 요구한다.

무조건 쓸 수 있는 모든 약을 쓰고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결정은 아니다.

남겨진 가족이 감당해야 할 비용과, 그 과정에서 환자 본인이 경험해야 하는 고통,

뒤늦게 하게 될지도 모를 '뭐라도 해봤으면 혹시 달라졌을까'하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들이 뭔가를 하거나 하지 않기 위한 의미가 되고 나는 그 '의미'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던 것 같다.

 

그 수술 이후,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일이 어떤 의미나 이유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보진 못했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었을 보호자의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라서,

아마 그 자체만으로 이 수술은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도 그래서 이 수술을 하신 거겠지.

축축히 젖은 긴 머리카락에서 나던 샴푸 냄새는, 지금 하는 이 행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건 환자를 위해 좋은 결정이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향해 던져왔던 질문에 대한 슬프고 향기로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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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앞서 독백형식으로 쓰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나한테는 어릴적의 잊을 수 없는 몇가지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1994년 인천에 위치한 산동네에서 내가 태어났다.

 

 

어릴적 나는 누구보다 밝게 웃는 작은 장난꾸러기 였다.

희미하게 빛이들어오는 반지하에서 엄마 립스틱으로 벽에다 낚서를 하고

근처 피복공장 지붕에 집에 있는 신발은 다 던져놓고,  그런 작은 꼬마였다.

 

 

코묻은 돈으로 포켓몬이 그려진 빵을 사서 맛있게 먹던

철없던 시절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가난 이란걸 잘 몰랐다.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분홍색 천원짜리 한장이면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철이 없었다.

 

 

1999년 봄,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이사온 집은 조그마한 빌라였지만, 전에 있던 집보다 컸다.

무엇보다도 햇빛이 잘드는 집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다녔고, 전에 살던 동네엔 없었던 '놀이터' 라는 곳에서 그네를 타고

작은 내 몸에 흔들리는 그네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웃던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나는 영원히 행복할줄 알았다.

 

 

 

 

그 해 여름에 나는 불행이란걸 처음 느껴봤다.

 

 

 

평소처럼 내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오셨고

엄마는 저녁상을 차려와서 온가족이 밥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때, 엄마와 아버지는 말다툼을 하셨다. 무엇때문에 싸우는 거지? 라는 생각을 어렸던 나는 하지 못했고,

단지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에 잔뜩 긴장하고 움츠러들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처음보는 낯선 장면이 나에게 겁을 줬다.

 

말다툼은 끊기지 않았고, 아빠는 목소리를 최고조로 높이며 밥상을 뒤엎었다.

나는 놀라서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엄마는 피하지 못했다.

깨진 그릇들의 유리조각들과 밥과 반찬들이 거실에 퍼졌다.

아빠는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조용히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거실이 깨끗해 질때쯤 엄마는 겁에 질린 나에게 다가오셔서

'미안해, oo(제 이름)아' 이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우셨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때의 내가

엄마에게 '괜찮아요, 엄마' 라고 말했던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의 발등이 까져 피로 물든것하고.

 

 

다음 날, 어제 처럼 두분은 말다툼을 하셨다.

무슨 이유로 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나는 단어는 '돈, 집, 그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 따위였다. 

 

 

말다툼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던 중

 

안방에서는 큰소리가 났다.

 

 

내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고있던 나는

큰 소리에 겁을 먹으며 달려나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악마가 있었다.

 

 

 

 

악마는 우리 엄마를 때리고 있었다.

어린 나는 감정을 버티지 못하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악마는 라이터기름을 꺼내더니 엄마에게 뿌리려고 했다.

한 손에는 피다 만 담배를 들고.

 

 

비명을 지르고 있던 엄마는 순식간에 작은 라이터 기름통을 쳐냈다.

그리고 그 작은 기름통은 내 발밑에 떨어졌다.

 

 

어렸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몇십초 뒤 나는 손에 작은 기름통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부터 도망쳤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도 나는 계속 뛰었다.

맨발로 달려나와 돌맹이를 차고 밟아 발에서 피가 나도 나는 계속 뛰었다.

 

그 시절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때 보았던 악마의 표정도.

 

 

어디까지 달려왔을까 하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 보았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저기가 천국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보던 나는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많은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겁이 났다. 알수 없는 통증이 나를 휘감았다. 아마 내가 '마음이 아프다' 는 말을 처음 느꼈을 때 였을것이다.

1미터나 겨우 넘었던, 아주 작았던 나는 세상이 처음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귀신따위를 보고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감이 나를 삼켜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때 나는 몸을 심하게 떨었던 것과

그리고 부들부들 떨던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을 때 아주 차가웠다는 것이다.

 

 

 

어두운 주차장 구석에 쪼그려앉아서 나는 계속 울었었다.

한 손에는 작은기름통을 든 채로.

그대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었다.

 

 

시간이 지나고 해는 산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른 산위로 달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 생각없이 계속 걸었다. 하루종일 맨발로 걸어서 그랬던지 다리는 저렸고, 발바닥은 곰발바닥 이었다.

집 앞에서서 문을 조심히 열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소리없이 집에 들어갔다.

 

 

안방문앞에서서 조심히 문을 열었다. 방은 깜깜했고, 그곳에 악마는 없었다.

단지 조용히 주무시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을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멍투성이 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집에서 그렸었던 점박이 강아지 처럼.

 

악마는 한동안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작은꼬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헛된 기대는 안하는게 좋다."

 

2009년 봄.

 

우리집은 다시 이사를 했다.

같은 마을에 있던 큰집이었다. 정말로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지만 말이다.

아빠 회사가 대박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큰집으로 이사올수 있었다고 부모님은 내게 말했었다.

 

 

아, 부모님이 아니라 엄마였다.

악마를 처음보았을 때부터. 난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빠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렸던 나는 그렇게 살았다. 우리는 그냥 공존했다.

어릴적 나는 '공존' 이라는 말을 한번에 이해할수 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그저 순수한 꼬마였다. 만화를 좋아하고, 문구점 앞에서

유행하던 팽이나 돌리면서 떠드는 그랬던 아주 작은 꼬마였다.

 

그리고

2002년 여름.

 

악마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비가 많이 왔었다.

거실과 부엌을 제외한 모든방의 불은 꺼져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그려져있었던, 지금도 내 마음한구석에서 날 괴롭히는

장면은 참담했다.

 

부숴진 아날로그 텔레비전과 라디오

깨진 유리창 그리고 양주병

바닥에 흐르는 양주

 

그리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나와

내 키보다 조금더 작은 골프채를 들고 있는 악마가 있었다.

 

악마는 엄마를 때렸다. 마치 당장이라도 죽이겠다는 것처럼.

나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 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악마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나는 미친개처럼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다리를 잡았다.

손에 매달렸다.

발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혀도 아프지 않았다.

소리쳤다. 미친개처럼 짖어댔다.

 

하지만 힘이 약하고 작았던 개 였기 때문에

곧바로 내동댕이 쳐질 수 밖에 없었다.

 

악마는 힘이 쎘다. 나보다 강했다.

 

하지만 엄마는 구할 수 있었다.

 

내가 내동댕이 쳐지고 엄마는 집 밖으로 도망쳤다.

3년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일이 있고 나서 1주일 후.

 

엄마는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악마는 엄마를 다시 때리지는 않았다.

 

 

조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나 악마는 아빠로 돌아오지 않았다.

악마가 내 아빠를 뺏어갔다.

 

우리는 그렇게 공존했다.

 

그리고 돌아온 엄마는

악마를 대신해서 나를 때렸다.

 

때렸던 이유는 간단하다.

 

눈빛이 건방지다.

말을 듣지 않는다.

제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다. 등등

 

그리고 나는 주먹과 발과

골프채와 몽둥이 등으로 맞았다.

 

아니, 맞아왔다. 쉴새없이 맞아왔다.

내가 어느정도 크기 전까지는.

한번은 그런적이 있었다.

밤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자고있는 내 뒤로 가서 뒤통수를 발로 찼다.

그 이유가 '재수가 없어서' 였던것도 기억한다.

 

피도 많이 났다. 멍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분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과,

맞는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엄마도 사라졌다.

 

집에는 악마 둘과 내가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고도비만이 되었고,

우울증 조울증 대인기피증 등의 정신병을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나는 왕따였다.

내가 다른 아이들 입장이었어도 못생기고 돼지인데다가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가진 애는 상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둬놓고 주먹으로 치고

발로 짓밟던 아이들의 모습은 잊어지지가 않는다.

 

2008년 여름

 

 

살은 빠지고 키는 커졌다. 친구가 생겼다.

그 동안 몇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의 두 악마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 죽이겠다 라던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부으며

언제나 그렇듯이 싸우고 있었다.

 

 

 

다만, 두 악마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점점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들이 싸울때면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말리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싸움때문에 나한테 피해오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싸움은 밤 10시 부터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그 동안 눌러왔던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자악마는 집을 나갔다.

여자악마는 집에서 분한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에게

여자악마가 말했다.

 

"OO아, 우리 같이 죽자.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

 

나는 여자악마에게 말했다.

 

"당신혼자서 죽어.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마."

 

내 말을 들은 여자악마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할말을 잃은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여자악마는 집을 떠났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몸에 유리가 박혀 그 상태로 집을 나간적도 있었고

 

집을 나와 주차장 구석에서 잠을 잔적도 있었다.

 

내가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그게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들이란다."

 

 

이 두가지 였다.

나를 제일 고통스럽게한 두 악마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한다....

 

 

 

상식이 먹히는 곳에서만 적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야한다.

보기에 그럴듯한 상식적인 사회안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집에는 세 악마가 살고 있다.

 

내 주위에는 악마가 있다. -完

 

---

 

 

몇몇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소설이라고 말해달라고.

 

죄송하지만 이런 소설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걸 가장 뼈아프게 알고 있으니까요.

 

응원해주신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사진인데 이렇게 쓰게되네요.

 

악마는 악마를 낳았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제가 저를 악마라고 말하는 이유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저로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제 존재는 제가 보았던, 그리고 지금도 보고있는 악마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 죄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분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항상 죄송하는 마음 잊지않겠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자살시도도 해보았습니다.

그 시절 저의 죽음을 막고, 저에게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해준 그분께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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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저차한 이유로 드림렌즈를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드림렌즈는 잘 때 착용하고 자는 시력 교정용 렌즈로서,

자는 동안 각막을 눌러주어 굴절률을 보정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낮동안 드림렌즈를 빼고, 안경이나 별도의 렌즈 없이 정상시력으로 생활이 가능합니다.

 보통 일반 렌즈보다 값이 비싸며 (70~80, 국산. 100~120 수입), 2년 정도 마다 교체해준다고 합니다.

 

 저도 딱 이 정도의 정보만 알고 겁색을 통해 수원 팔달문 근방의 유명한 안과에 찾아갔습니다.

사실 드림렌즈 전문 안과를 찾고 싶었으나, 이에 대한 정보 자체가 찾기 어려웠으며,

안과는 거의 라식, 라섹 류로 후기 및 광고가 이루어 지고 있어서,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주지 인근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가는 병원으로 골랐습니다. 

 

 

 처음 방분 전 전화했을 때는 2시간 가량 걸린다고 합니다.

다른 병원 홈페이지를 봐도 검사에 테스트 후 상담까지 1시간 반은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더군요. 실제로 저는 한시간 조금 안 걸렸습니다.

참고로 전화로 문의했을 때, 검사 후 눈이 피로할 수 있으니, 가급적 차량 운전은 하지 말고 올 것을 당부했습니다.

 

 

----본격 후기----------본격 1인칭 시점으로 전환-

 

별도의 예약없이 안과에 찾았다.

사람이 많아서 오래 걸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람많은 안과는 이미 시스템이 공장과도 같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니 걱정은 하지 말기로 한다.

고객 응대 시간 길어지면, 수입 줄어드는 것은 병원이니 더 잘 해놨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들어선 순간, 역시나 공장과도 같이 보였고 물건 대신 손님들이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풍경이 분주하다.

역시나, 날 놓치지 않고 카운터에서 난데없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묻고 시작한다.

 

이사람아, 난 처음이다.

 

"처음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이거 작성해 주세요"

"네"

익숙하게도 미장원가면 주는 종이랑 똑같은게 적힌걸 주더니,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를 적으란다.

 

'뭐지, 주민번호는 왜 적으라는거지? 인터넷 회원가입도 이제 주민번호 못 물어보는데..'

하며 괜히 기분이 나빠지려하지만, 의료보험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해가 된다.

 

번호를 도로명 주소로 적었더니 다시 와서 시스템에 입력이 안된다고 옛날 주소로 알려달란다. 

아직 못 외워서 노트 어플에서 찾아서 알려주었다. 순간, '주소도 못 외우는 이상한 놈' 으로 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는 커플이 한 쌍 있는데, 곧 결혼할 사이 같다. 여자는 뭔가 얼굴이 쌔삥 느낌이 나고, 눈을 감았다 뜨면서, 셀카를 찍는다.

옆에 따라온 남자는, 계속 전화 하면서 고객님과 통화로 영업을 하고있다.

카운터에서 뭐라 뭐라 부르니까, 둘 다 일어서더니 카운터로 걸어간다.

그리고 여자는 한 서 너 걸음 뒤에 서있고, 남자는 가서 카드를 빼고 결제한다.

음...여자가 얌전해지는 순간이다. 뭔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환자를 보는데, 거의 할머니다.

 

 인근 동네의 할머니들은 다 여기 오는 모양이다.

녹내장, 백내장 수술도 전문이라고 써놨던데, 정말 노인 분들이 많이 오는 소문난 곳인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안심이 되는데, 녹내장 수술 잘 하는거랑 드림렌즈랑 무슨 상관일까 싶기도 하다. 

 

 2시간 생각하고 왔는데 벌써 내 이름을 부른다. 

 

그 뭐냐, 턱 받히고 눈 뜨면 열기구 보이는 그 기계로 오란다.

역시 턱 올리라고 한다. 어, 근데 여기는 턱 받치는 곳에 종이를 안 대놨다.

저번에 간 '안경집' 조차 종이를 한 장씩 벗겨가면서 청결하게 접촉하도록 해놨던데...

종이 끼는 트레이가 민망하게 노출되어 있다. 근데, 깨끗하다. 

나는 쿨한 남자라는 듯이 으쓱함으로 턱을 얹었다. 

 

주웅...직직

주웅..직직

 

열기구 초점이 선명했다가 흐려지면서 눈을 촬영한다.

아마 상이 맺히는 눈의 내부를 찍는 것 같은데, 흑백인지 칼라인지 궁금해진다.

오른쪽 눈을 다 찍고 왼쪽눈 쪽으로 기계가 움직여서 다가온다. 

 

뭔가 얼굴과 기계의 라인이 안 맞았는데, 검사하는 분이 손으로 말 없이 내 고개를 돌려서 오른쪽으로 로테이션을 시킨다.

이제 내 왼쪽눈이 정면을 향했나보다. 이 분 시크하시다.

 

"눈 깜박! 하세요~"

아, 내 눈 시릴까봐 시간주는구나 싶어서, 눈을 몇번 깜박이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열기구를 본다.

이 분 친절한 분이었다.

 

주웅...직직

주웅..직직

 

"다 됐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시력 재는 판때기 앞으로 나를 부른다. 그리고는 가림판을 준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내려가며 찍고, 요령을 설명듣지도 않았지만, 난 자연스럽게 숫자를 크게 말한다. 

이상한게, 뚜렷하게 보이면 크고 뚜렷하게 말하고, 흐리게 보이면, 작은 소리고 질질 끌며 대답하게 된다.

 

"사!"

"오!"

"칠!"

"...삼"

"........사..아?"

".............유...욱?...."

 

그리고는 바보 렌즈테를 껴주더니 눈 앞에 더미 렌즈와 도수 렌즈를 조합하고 다시 시력을 잰다,

 

"사!"

"오!"

"칠!"

"삼!"

"사!"

"육!"

 

1.0까지 잘 대답하니까 검사판에서 같은 라인의 숫자만 옆으로 물어보고 더 안 내려간다.

난 그 아래 칠도 보이는데......

 

그리고는 다른 쪽 눈에 다시 렌즈를 조합하고 시력을 잰다.

또 똑같이 1.0 에서 더 안 내려간다.

 

뭔가 아쉬워하는데, 다 됐다고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뭔가 했는데, 난 카운터에서 '드림렌즈 진료받으러 왔어요' 말고는 한 말이 없다. 

뭔가 알아서 후루룩 흘러가는데, 도대체 내가 뭐하는지도 모르겠고, 누가 설명도 안 해주고,

그냥 자기 담당 검사 끝나는 옆으로 패스 하고 난 패스 당하고...

뭔가 지나치게 분업화 된 공장형 시스템이 갑자기 불만이 든다.

사실 다 기본적인 필수 검사라 딱히 설명은 필요 없지만, 그래도 난 더 섬세하게 케어받고 싶다. 나도 우쭈쭈 해달란 말이다.

 난 나의 소중한 눈을 위해!!! 거금 80만원을 투자할 생각으로 걱정 반 불안 반으로 왔는데,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서 드림렌즈에 대한 궁금증도 많은데, 아무도 상담을 안 해준다.

 

뭔가 불만 거리가 생기니까 알리고 싶어진다. '아 돌아가면 사용기나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쯤 다시 부른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갑자기 문을 나서더니 맞은편으로 들어가는데 수술센터라고 적혀있다. 

'헉, 뭐지....'

 

끌려가보니 아까랑 비슷한 열기구 보이는 기계가 있는데 앞에 앉으란다.

 

"CT찍을 거에요~ 턱 올려주세요"

 

'응?CT? 그, 야한 생각하면 뇌 그림에 막 활성화되서 보인다는 그 비싸다는 그건가?'

'근데 기구는 누워서 침대타고 들어가는게 아니고, 아까 그 열기구 기계 같이 생겼다...'

 

앉아서 턱을 장착하고 기다리는데, 옛날 사진관에서 아저씨가 뒤집어 쓰던 암막 커텐 같은 걸 기구랑 내 머리에 함께 씌운다.

이 장치에는 빛이 들어가면 안 되는것 같다.

 

"앞에 빨간 점 봐주세요~ 눈 깜박 하시고"

 

(깜박)

 

"천천히 하세요~ 까암빡~"

(깜빡)

 

"천천히 까아암~~빡"

 

(깜...............빡)

 

"자 앞에 보시고.."

 

앞에는 가운데 붉은 점이 있고, 세로로 녹색 막대가 크고 길게 있다. 그 가운에 붉은 점을 보라는 것 같다.

이건 그림이 아니고 빛 기둥이다. 영화에서 망막 스캔 하는 것 같이 빛이 눈을 향해서 빛나고 있다.

갑자기 녹색 기둥이 360도 회전한다. 아, 이건 회전하면서 스캐닝하나보다.

 

뭔가 비싼 장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족감이 든다.

 

"됐습니다 따라오세요~"

 

다시 나를 끌고 가더니 아까 앉아있던 의자에서 기다리란다. 

 

뭔가 병원도 오랜만이고, 이런 시스템도 재미나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직 의사 얼굴도 못 봤다는건 여전히 불만이다.

그러면서도 이해는 된다. 어차피 얼굴보고 일단 기본 검사하러 보낼 텐데,

나 같아도 그건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인 것 같이 느껴지긴 한다.

 

기다리면서 옆을 둘러보니 역시 할머니들이 많다.

일하시는 간호사인지, 검안사 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직원도 족히 10명은 넘어 보이고 모두 바쁘다.

좀 대빵처럼 되보이는 한 분은 어떤 할머니께 진료 일정과 비용을 설명하시는데, 할머니가 잘 안들린다고 하신다.

뭔가 그 분은 능숙하고 무릎을 굽혀 앉아서 눈을 맞추고 손으로는 할머니 손을 잡고 설명해주신다. 베테랑 같다.

어른들께 잘 하는 모습보니 왠지 불만이 좀 누그러지는것 도 같다.

 

 

다시 나를 부른다. 거울 앞에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 테스트 렌즈 넣어드릴게요. 앞에 보세요~"

 

 

 

'응? 테스트?'

갑자기 이물감이 걱정된다. 난 인공눈물도 자꾸 눈감아서 못 넣는데 망신당할까 걱정이다. 다행이 한번에 넣어줬다. 

 

오~~~~~~~~~~~~~~~~~~~

으악~~~~~~~~~~~~~~~~~

 

눈이 엄청 ..미치겠다.

막 모래가 들어 간거 같고 눈물이 갑자기 푹풍처럼 쏟아진다. 

눈물이 나서 렌즈가 빠질까봐 눈을 못 뜨겠다. 그런데 옆에서 간호사는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고 계속 눈뜨라고 한다.

"눈 아프시면 깜빡깜빡 하세요~ 천천히~~"

 

깜박 해본다.

 

마치 엄청 신 귤 먹은것 처럼 표정이 자동으로 히끄므레 해진다. 아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이 보인다. 표정관리가 안된다.

눈은 부르르.....천천히 깜박이는데 감고 뜨기가 무섭게 이물이물.....다시 감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왼쪽을 넣어준다...

 

 

 헬이다.

 

 

10분 동안 이러고 있으랜다.

 

눈이 막 렌즈 둘레가 각막을 긁는 것 같은 느낌이다. 드림렌드는 하드렌즈다. 

난 하드렌즈 처음 껴본다.

아 죽겠다. 눈을 감고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는데 모래가 같이 따라다닌다. 

눈물이 계속난다. 간호사는 휴지도 안줬다. 아까 렌즈낀데 옆에 휴지가 보인다.

히끄므레 한 표정으로 눈썹만 치켜뜨고, 눈은 반 쯤 뜨고 좀비처럼 휴지가지러 간다. 

손에 잡히는대로 몇 칸 뜯어와서 막 눈물을 닦는다.

 

한 4분 지난거 같은데, 이제 좀 뜨고 있어도 참을 수 있다.

근데 자꾸 렌즈가 고정이 안되고 막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적응될 만하면 렌즈가 움직여서 둘레가 각막을 긁는 기분.

자극이 오니 눈을 그냥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눈을 45도 아래를 바라보니 좀 나아진다.

렌즈가 눈 위에 있다가 멀어지는 쪽으로 쏠려서 그런가보다. '이러고 있어도 되나?'

아무튼 이게 좀 있기가 편하다. 

 

그러고 울고 있는데 어느새 날 부른다. 

 

다시 시력 측정을 한댄다.

 

"저 렌즈 끼고 있는데요?"

"네 괜찮아요~"

 

그러더니 다시 숫자를 집는다. 

 

상이 너무 흔들린다. 렌즈가 고정이 안 된 기분....눈물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인다.

 

"눈물 때문에 안 보여요"

휴지로 눈을 닦아주는데 뭔가 전문적인 손놀림이다.

눈 위를 훔치는게 아니고, 손가락으로 눈 주변 살을 당기더니 어떻게 눈물을 닦아준다. 뭔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뭔가 달라서 괜히 좋다.

 

다시 시력판을 짚어가며 숫자가 보이는대로 읽으란다.

솔직히 잘 안보이고 흔들리는데, 계속 같은 순서로 같은 숫자를 짚으니,

이미 무슨 숫자인지 인식이 되어 있어서, 흐릿해도 그 숫자로 내가 정보를 구성해 버린다.

이 숫자를 모른 상태로 읽었으면 알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걸 보인다고 숫자를 읽어야 할지, 안 보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저 분은 왜 자꾸 같은 숫자만 같은 순서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이거 외울 판이다. 

 

"잘 안보여요, 눈도 불편하고.."

 

이번엔 다른 쪽 눈.

 

오 이쪽 눈은 훨씬 뭔가 안정되고 덜 아프다. 숫자도 1.0까지 완벽히 또렷하다. 

힘차게 숫자를 읽어 내려간다. 

 

'아까 꺼는 왜 흐릴까...적응이 덜 됐나? 렌즈가 안 맞나?

드림렌즈는 끼고 나서 눌리고 빼면 잘보인건데 왜 렌즈를 끼고 있는데도 잘 보이지? 도수가 있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역시, 난 또 대기하라고 한다. 불편한 한쪽은 다른 렌즈로 바꿔 껴줬다.

 

또다시 10분간 대기....

 

할머니 구경...

 

다른 팀? 대화 구경....

 

다시 시력 검사를 한다. 아까보다는 눈이 덜 불편하지만 아직도 모래는 가득하다.

 

그러더니 원장님께 데려간다.

 

뭔가 잘 보여야 겠다는 생각이 파블로의 개처럼 들어서, 꾸벅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호!"

 

아 뭔가 내가 너무 없어보인다. 그래도 30 넘은 나인데...왜 이렇게 헤헤 거리는 모습으로 인사했을까.

원장님이 말한다.

"드림렌즈요?"

"네"

"턱 좀 올려주세요~"

 

나에게 열기구를 두 번 보여준다.

 

저 열기구는 어디서 찍었을까? 윈도우 배경화면 같이 익숙한 저 그림.

왜 눈 검사 기구는 하나같이 열기구 그림일까? 저 그림은 저작권이 있을까? 다 같은 회사인가?

전체적으로 녹색톤인데, 무슨 관련이 있나?

검사할 때 눈을 움직이면 안될텐데, 차라리 시선을 고정할 수 있는 사진이면 어떨까? 그라비아? 

이런 말도 안되는 딴 생각으로 눈에서 신경을 떼어 최대한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눈을 만든다. 

 

 

다른 기구를 들이댄다.

이 기구는 눈에 엄청 밝은 빛을 쏴준다. 그냥 봐도 눈 속이 다 보일 것 같다. 아 진짜로 의사가 눈 속을 보고있다.

뭔가....민망하다.

 

검사끝.

 

"괜찮으세요. 렌즈는 3~4일 후에 오니까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뭐지? 이 마무리 멘트는? 상담 안해줘? 나 궁금한거 많은데? 이게 끝이야? 최소한 부작용은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물어보기로 한다.

"아까 낀 렌즈가 뭐에요?"

"그게 드림렌즈에요"

"에? 끼니까 잘 보이던데요?"

"네. 드림렌즈가 각막을 눌러서 ...블라블라블라....."

메뉴얼 같이 드림렌즈 설명을 한다. 문제는 이미 인터넷에서 보고 와서 아는 내용

 

"아 궁금한게 있는데요, 그럼 드림렌즈에는 도수가 있어요?"

"네 있습니다."

응? 왜지? 

"아..그럼 잘때 끼는건데, 자기 전에도 끼고 렌즈처럼 껴도 돼요?"

" 네 괜찮아요.."

 

갑자기 이해가 안된다. 질문이 마구 생긴다.

드림렌드는 단순히 누르는 기능이고, 도수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아까 테스트는, 각막이 눌렸을 때 교정시력 잰거 아닌가?

렌즈 뺐을 때도 그 시력이 되는거 아닌가? 근데 렌즈도 도수가 있어? 그럼 빼면 그거보다는 안 보이겠네?

뭐지?

왜지?

 

 

막 궁금한게 생긴다. 그런데 왠지 의사가 시간을 아끼고 싶어하는것 같다.

 

몇 가지 더 질문했으나, 속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뭔가 그 분위기 자체가 쓸데없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알겠다고 하고 진료실을 나오니, 여태 날 데리고 다니던 간호사분이 내 번호를 확인하고 연락준단다.

가격은 80이고 , 결제는 그날 할건지 물어본다.

 

"현금이면 할인돼요?"

안된단다. 뭔가 현금 카드 같은 가격이 오히려 좀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최소한 장부 갖고 장난은 안 치나보다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든다. 

일단 나중에 결제하기로 한다.

 

2시간 예상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끝났다.

뭔가 엄청났던 렌즈 이물감이 생생해서, 당장 돌아가는 버스에서 네이버로 '하드렌즈 이물감' 을 검색하고 싶다.

왼쪽 눈은 그나마 덜 이상했는데, 오른쪽 눈이 더 불편했다 .렌즈가 안 맞는 걸까? 더 편한걸 찾아봐야 됐었나?

뭔가 설명도 듣지 못하고, 불안감도 좀 든다.

 

3일 정도 있다가 전화가 올 텐데....

 

걍 다른 안과를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모르겠다...

 

뭔가 설명도 부족한 공장식 시스템은 여전히 맘에 안든다..

 

 

 

 

 

약 한달이 지난 지금의 후기를 다시 업데이트 해봅니다.

 

먼저 간단히 경과를 말씀드리면,

 

렌즈를 처방 받고 1주일이 지나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아 렌즈를 교체받았습니다. 

 

보통 드림렌즈의 경우 교정 목적에 부합할 때 까지 계속해서 렌즈를 바꿔주고, 새로 주문해서 바꿔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추가비용은 없었으며, 오늘 안과에서 들은 바로는 따로 무상 교체 기한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 병원에서 제조사에 신청하면 그냥 되는 것 같습니다. 

 

먼저 드림렌즈 착용 전 제가 상상했던 부분은 이랬습니다.

 

아침에 렌즈를 빼면 눈 앞이 라식 수술을 한 것처럼 맑게 보이겠지??

 

그랬던 제 상상은 역시 상상 뿐 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좀 불만도 있었습니다 (약 1주 이내). 아침에 일어나서 렌즈를 빼도 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참 죽겠는데, 시력이 교정 중이다 보니 기존에 쓰던 안경을 쓸 수도 없습니다.

무슨말이냐면, 드림렌즈가 밤에 눌러줄 수 있는 변화량? 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 기존 시력에서 교정시력으로 바꾸려면 눈의 망막을 -10만큼 눌러줘야 굴절률이 확보된다고 한다면, 

 

렌즈로 눌러줄 수 있는 깊이는 하루에 -3정도이고, 또 낮 동안 렌즈를 빼면 한 +1~2 정도는 다시 원상복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3 +2 -3 +2 이런 식으로 교정을 하고 하고 며칠 동안 반복해야, 비로소 각막이 충분히 눌린 상태가 됩니다.

 

보통 1주라고 이야기 하는데 전 대략 2주가 지났을 때, '어 오늘 왜이렇게 또렷하게 보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차 적응 기간으로 1~2주 정도 잡으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 기간 동안은 , 안경도 무색하고 그냥 잘 안보이는 상태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 각막이 교정 중이라, 예를 들면 지금 -5만큼 변한 상태라해도,

안경은 이전 시력 기준으로 +10 해주는거라서, 봐도 어차피 +5로 잘 안보이는건 매한가지 입니다.

 

 이 기간 동안 흐릿하게 상이 보이는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눈이 쉽게 피로해지기도 하고 좀 불편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전 드림렌즈에 대한 불만을 상당히 품게 됐는데, 도무지 잘 보일 차도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벌써 병원에 갔었을 텐데, 그러던 차에 해외 출장으로 꼼짝없이 2주간 외국에 있어야 했기에 잔말없이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매우 성가신 기분을 느꼈습니다. 가뜩이나 간판이나 사람들도 낯선데 명확한 인식이 불가능 했기 때문입니다.

그 즈음 제가 보이던 느낌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첨부된 사진이 그때 보이던 느낌입니다.

글자는 그나마 보통 명도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익숙한 알파벳이니 괜찮았는데,

사람 얼굴 같은 경우 뭉개져서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난시가 약 -1~-1.5 정도 있기 때문에 더 그런 현상입니다.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이걸 반드시 의사에게 말하리라! 하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위에 적었다시피, 출장 복귀 즈음해서, '엇, 왜 이렇게 잘보이지?' 하고 어느 정도 교정의 효과를 맛보는 순간이 생기게 됩니다.

어느날 PPT 화면이 매우 잘 보였고 아침부터 눈 앞이 깨끗했습니다. 

 

 그렇게 출장이 끝나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깁니다.

정상적으로는 그 상태로 병원에 가야했는데, 병원에 가려면, 어쨌든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로 접어 들어야, 그 결과를 기준으로 상담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침 해외에서 귀국하여 시차 문제로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잠을 자다보니, 드림렌즈를 충분히 착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4시간만 각막을 눌러주다보니, 교정 효과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4시간 자는 생활 1주일,

 

그리고 다시 7시간 정도 자는 생활로 돌아와서 충분히 드림렌즈를 착용한지 1주일 정도 지나니,

다시 시력이 좋아진 상태로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총 1달 만에 다시 안과를 방문했습니다. 그게 오늘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점이 깨달은 점입니다.

 

 

- 하드렌즈 종류인 드림렌즈를 껴도 이물감은 사실 3일 이내에 사라지고 거의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 드림렌즈를 끼면, 일단 그 즉시 매우 잘 보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자기 전에 끼고 작업을 하고 했었는데, 이럴 경우 눈을 깜박일 때마다 렌즈가 미묘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원하는 교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전 한 2시간 정도 끼고 작업하고 그대로 자서 5시간 잘때 착용하고 했었는데, 효과가 안 좋아서 잘때만 끼니 오히려 더 좋아졌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렌즈는 최대한 안 움직이고 일정하게 눌러주는 것이 좋기 때문에 잘때 착용을 권했고, 

사실 그 얘기는 뒷등으로 흘려들었었으나, 지금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시력 교정 초반에는 생각보다 사물이 잘 안보여서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불만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렇게 잘 안보이는 상태로 사물을 바라보는게 처음있는 경험이었기에(항상 안경이나 렌즈 착용) 더 낯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그런 느낌이 강조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참 신기한게, 그런 상태에 적응이 됩니다

 나중에는 시력 교정 효과 + 흔들리는 사물 인지 능력이 더해져서 불편은 덜 느끼게 되었습니다.

 

- 난시 교정에 큰 효과는 없습니다.

물론 난시 교정 전용 드림렌즈가 있지만, 이 경우 정확한 위치로 착용 되어야 하는데, 매번 그렇게 착용하는건 사실 매우 어렵습니다.

렌즈는 계속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렌즈가 제대로 고정이 안되거나 다른 위치에 압박된 경우 그날은 교정 효과가 떨어집니다.

렌즈를 잘 때만 충분한 시간으로 잘 착용하면, 확실히 구별되게 아침에 시력이 좋습니다.

 

- 렌즈를 뺄 때는 반드시 인공눈물로 적셔주고 렌즈를 눈에서 떨어뜨려 준 뒤 뺍니다.

안 그러면 '뿩' 소리가 나면서 '쩍' 하고 빠지는데 눈도 아프고 각막에 상처를 남기며, 무엇보다 그날 아침은 흐릿합니다.

각막에 상처가 났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 인공 눈물은 일상 중에 렌즈를 안 착용했을 때도 넣어주라고 합니다.

각막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고르게 해주어, 난시 교정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 보이는 정도는 제가 가만히 한쪽 눈 씩 가리고 분석을 해보니, 상은 비교적 또력하게 보입니다.

즉 근시 교정은 1.0 수준까지 교정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안보인다' 고 인식하는 이유는 상이 흔들리는 것 처럼 주변에 뿌옇게 보이기 때문이고, 이는 난시가 원인입니다.

즉, 근시 교정은 우수, 난시 교정은 절반 정도인 느낌입니다.

 

 총평으로 그래서  잘 보이냐!!!

 

 

 안경 안쓰고 사는게 너무 좋고, 선글라스 자유롭게 낄 수 있는게 너무 편합니다.

 

눈은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고, 하루 종일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안보이는거 없이 잘 보입니다.

간혹 착용이 바르지 못했는지 감이 좀 떨어지면, 걍 웹서핑시 컴퓨터 화면을 좀 확대해서 읽으면 딱히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보이는 건 저 멀리 있는 간판 같은건 오히려 더 잘 보입니다.

예시로 올려드린 그림은 한창 교정 중에 보이는 정도를 묘사한 거고,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겁니다.

지금은 그림보다는 훨씬 잘 보입니다. 쉽게 말해 교정이 안정화된 이후로 안 보여서 불편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욕심을 부려서 난시를 더 잡고 싶어서 그렇지, 지금 상태로 쭉갈래, 드림렌즈 안할래? 하고 물어보면 당연히 지금 상태에 만족하겠습니다. 

 

기타 사항:

 

=세척액은 총 3종으로, 매일 쓰는 세척액, 보관액, 3일에 1번 정도 쓰는 단백질 제거 전용액 (2방울씩 사용)을 안과에서 처방받아서 쓰고 있습니다.  오늘 세척액과 보관액을 한 통씩 더 샀는데 21000원이 들었습니다.

 

 =인공 눈물을 상시 사용하게 되는데, 병원에서 처방받으면 3500원 정도에 꺾어 쓰는 1회용 한 세트를 살 수 있습니다. 

 

 =드림렌즈를 시도하실 분은 자주 방문하기에 번거롭지 않은 병원을 선택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의사 실력으로 결정된다기 보다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렌즈를 골라야 합니다.

평소 정기 검진을 포함한다면, 왕복이 편한 병원이 좋을 듯 합니다.

 

 =비용은 렌즈값 80만원 만 들었고, 기타 비용은 없었으며 교체나 수시 진료에 의한 추가 비용도 없었습니다. 

 

 =제 렌즈는 CNB 렌즈라는 국산인데, 만족합니다.

 

 =드림렌즈를 하게 되시면, 교정 전 안경없이 보는 상태를 0이라 치고,

안경 껴서 깔끔하게 잘 보이는 상태를 10이라고 했을 때, 8~9 정도가 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크며, 난시 여부에 따라 더 달라집니다. 사람에 따라 7~9.5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드림렌즈로 교정 가능한 정도는 보통 근지 -4~5 디옵터, 난시 -1.5~1.7 디옵터 정도가 마지노선이라고 합니다.

 

 = 본인이 최소 6시간 부터 8시간 정도 수면을 확보할 수 있을 경우에 추천합니다.

 

 = 아침에 렌즈를 빼고 바로 보다, 약 30분~1시간 정도 지난 시점이 더 안정적(?)으로 잘 보였습니다. 

 

 = 밤이 되어도 딱히 시력이 저하되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2일에 한 번 만 착용해도 효과가 유지되는 사람도 있고,

역시 개인차가 있습니다만, 매일 착용한다면 밤이라고 시력이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운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교정시력에 적응 되기 까지는 가급적 삼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이 뚜렷하지 않으면 반사신경이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적응되고 나니 운동신경에 딱히 차이는 못느끼겠습니다.

 

= 밤에 빛 번짐 같은건 없었습니다.

 

 

잘보여서 행복해요 *_*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4364296

 

오감이 살아있을 때 쓰는 드림렌즈 1차 진료 후. txt. 수필체. 스크롤 압박 : 클리앙

평소 다채로운 사용기에 감탄하다가 저도 하나 남겨봅니다. 특히, 드림렌즈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어서, 도움이 될까 싶어 남기게 된 이유도 큽니다. 이차저차한 이유로 드림렌즈를 사용

www.cli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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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대학생때 알바 실화임 

대략 2년간 호프알바를 하면서 벌어졌던 상황들 ...

 

1.

동네장사라서 그런지 중국노동자놈들이 엄청나게 많았음 

술에 만취해서 같이 일하는 여자알바누나 계속 벨눌러서 불름

막상가면 뭐 시키진 않고 계속 중국말로 뭐라뭐라 술주정함

보다보다 빡쳐서 다음 벨 울릴때 내가 감

쉬 이즈 마이 걸프랜 돈터치 되도 않는 영어로 지껄임

한 놈이 알아듣고 유 걸프랜? 물어봄 

예스 마이 걸프랜 돈 터치 라고 했더니 바로 멱살잡고 나 들어올림

3명이 동시에 일어서 중국말로 뭐라뭐라 고함지르는데 

내 당창 패기는 순간 멘붕 

뒤에서 보고 계시던 사장님이 야이짱개새끼들아 하면서 달려오심

근데 바로 사장님도 멱살잡이 당함 ㅠ.ㅜ;

이때 그 많은 손님들 다 구경만하고 아무도 안도와줌 (젠장...)

사장님 멱살잡이 당하시곤.. 우리 가게에 기도 얘들이 몇명인데 

니들 다 디졌어 짱개새끼들아 고래고래 소리지르심 

 

 

* 기도 

일본어의 기도(木戶 ,きど)를 의미합니다. 문 앞에 서있는 가드(문지기)를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무전취식 막는다던지, 싸움나면 말린다던지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한주먹 하는 건달을 지칭하는 안좋은 느낌도 있으니, 부지배인, 문지기, 안전요원 등으로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Fairytale 님의 댓글)

 

 

그러더니 날보며 야 얘들 다 불러와 라고 말하심

우리가게 기도가 대체 어디있단 말??? 나 멘붕 

사장님이 "빨리 불러와 임마" 라며 계속 소리 지르심 

일단 밖으로 무작정 나와서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별로 믿음이 안가서 

발만 동동 굴르며 거리 간판들만 계속 봤음 

지금은 많이 없어진 당시 한참유행이었던 

성인게임장 "바다이야기" 라는곳에 무작정 들어감 

알바 앞치마 입고 내가 왔다갔다 하니까 

어떤 덩어리가 나한테 바로 멈추라고 다가옴 

다급하게 가게상호이름대고 상황 말하고 좀 도와달라고 말함 

빨리 가자며 바로 나오심 

가게로 들어서자 마자 상황 보고 그 기도는 바로 달려들어감 

중국놈 하나 들어올리더니 빈테이블에 내동댕이침 

나머지 두명 움찔움찔거리더니 양손에 머리 잡혀서 끌려감 

포쓰가 너무 무서워서 감히 덤빌 마음이 안생겼음 

건달은 정말 무섭구나 하는걸 느낌 

끌려간 둘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테이블에 쳐박힌 중국놈 한놈은 진짜 오지게 맞고 갔음 

사장님이 너 건달이었냐?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심 

나중에 상황 보곤 경찰불르라고 내보낸 건데 진짜 건달와서 놀랬다고 말하심

그래도 센스있게 잘했다며 칭찬해주심 

그날 새벽 사장님이 그 기도에게 양주대접함 

 

2. 우리가게에는 막걸리도 팔았음 

엄청큰 막걸리 통에다가 부어서 보관하는 거라서 

항상 막걸리 통에서 구더기같은 벌래들이있었음 

미관상 보긴 정말 안좋으나 맛이 좋다고 많이들 찾아오심 

어차피 손님들한테는 양은주전자에 따라가니 잘 모름

어느날 손님들 와서 메뉴판 펴서 딱 주려는데 

부왁~~ 그 메뉴판 책 필때 가운데 사이에 구더기 3마리 정도가 기어다님 

손님 앞에서 펴서 주다가 말고 바로 닫고 내가 들구 있음 

손님들 존나 날 쳐다봄 나 존나 땀남 

손님들 메뉴판 주세요 주문하게 라고 하는데 나 멘붕해서 "안 돼요" 라고 말함 ㅋㅋㅋ

손님들 이 병신은 뭔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메뉴판 빨리줘요 노래를 부름

나 식은땀 졸라남 메뉴판 딴거 가져다 드릴께요 라고 말하며 돌아서는데 뒤에서 

이집 메뉴판은 다 다른가봐 킈킈크킈 라는 소리들림 

상황을 모르니 그럴수 있지만 나 빡쳐서 사장님께 막걸리 

용기좀 어떻게 하자며 따지다가 벌레나 잡으라며 역관광당함 

먹는 음식이라 약치면 안됨 다 손으로 잡아야함

 

 

3.

일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누나알바가 야 쟤네 동성애자야 라고 말함

그 테이블 보니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놈들이 앉아있음

설마하는 마음에 일하면서 계속 지켜봤는데 둘이 키스하고 아주 난리임

한놈은 대머리까진 중년신사에 한놈은 20대초반 청년인데 왜 저지랄인지 모르겠음

사장님 상황파악하신 후 손님들보면 술맛떨어진다며 내보내라고 하심

나도 공감하고 한숨크게 쉬고 테이블로 다가서서 말할려고 딱 섰는데

근데 씨앙 뭐라고 말하면서 나가달라고 해야할지를 모르겠는거임

니네 둘 다 고추달렸는데 뽀뽀하면 안 돼라고 말하기엔 내가너무 악당이되는거 같았음

그냥 조용히 죄송한데 나가주세요 라고 말했음

중년애자는 한숨한번 쉬더니 가자 이러는데 젊은 애자가 갑자기

버럭버럭 소리지르면서 내돈내고 이 자릴 산건데 왜 나가라며 따지기 시작함 

버럭버럭하는거 듣구있는데 다 맞는말인거임 나 버벅대며 당황하고 있으니까 

알바누나가 척척 오더니 손님들이 너무 불쾌해 하셔서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함

이상하게 둘다 수긍하더니 조용히 나감 사장님이놈은 

계산은 웃으며 받으며 벌써가시게요 라고까지 말함

개자식이라고 속으로 욕함 

그날 누나알바에게 고맙다고 피자쏨

 

 

4.

만취 한 아저씨가 자꾸 나를가르키면서 어이 아가씨 어이 아가씨 라고 

벨은 누르지도 않고 큰소리로 자꾸 날 불름

당시 내가 머리를 길르구 귀걸이 까지 하고 다녀서 취해서보면 그럴만함

가까이 가보니 그냥 사람이 아니고 떡임

그 아저씨 내 엉덩이를 마구 쓰다듬으시더니 

아가씨 내 딸같아서 그래 이거 용돈해 하며 뒷주머니에 만원 넣어주심

나 개당황함

뒤에서 사장님하고 알바누나 보고 개웃음 

그날 가게에서 내 별명 아가씨 됨 

 

 

5.

가게가 정전이 됨 손님들 만석이었는데 

우리직원들 멘붕 

어떻게는 초 켜서 여기저기 불키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 비명소리 들림 

누가 자기 가슴만지고 도망갔다며 아주 울며불며 난리가났음

경찰불러달라고 해서 경찰 부름 

경찰 오자마자 여기 범인잡을때까지 통제한다며 다들 못나가신다고 출구 막음

사람들 술먹고 집에 못가게 한다며 경찰하고 싸우기 시작함

순찰대원 두명이왔는데 가게에 계산하고 나가려는 손님들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함 밀치고 난리났음 

순찰대원들 지원요청해서 순찰대원 4명 더옴  

화살이 저여자하나때문에 집에도 못간다며 그여자 가시방석됨

정전이 끝나고 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그 여자 처다보고 손가락질 하며 욕하기 시작

그여자 결국 울면서 잘못했다며 순찰대원들 다 돌려보냄 

 

 

6.

내가 싫어하는 손님부류가 외국노동자랑 다방레지들임 

오봉들은 그날 손님들한테 받았던 스트래스를 알바생들한테

풀려는 경향이 정말 많음 

마감 1시간전에 오봉들 4명 들어와서 안주랑 술 시킴 

마감연장이구나 가뜩이나 기분안좋은데 

야야 거리면서 날 막 불름 

담배사오라며 2만원 테이블에 던짐 

우리가게는 담배심부름 안한다고 말했지만 

완전 어이없다며 손님이 왕이라는 식으로 말함 

그래 어차피 손님도 니네 한테이블이다 라는 생각에 뭐피냐고 물어봄

근데 이뇬들이 니 센스본다 담배4갑 아무거나 사오고 남는건 너해라 

라며 존나 낄낄댐

개 ~~~ 빡침 순간 좋은생각나서 담배가게로 가서 

아버지가 가끔 피셨던 한라산 달라고 함 

없다고 하심 그럼 옛날담배 뭐있냐 라고 물어보니 

장미라는 담배가 있다고 하심 

장미 4갑 사서 던져줬음 

이게 뭐냐 며 존나 열폭들하면서 따지기 시작함 

사뒀던 장미 1갑꺼내서 한대불 붙이고 피면서 

난 월래 이거피는데요 라고 말함 

다들 순간 벙찜 

뒤에서 하도 욕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주문한 해물떡볶이에 담배핀 한대핀후 가래침 잔뜩 뱉에서 섞어서 내줬음

이 집 음식은 진짜 잘한다며 잘처먹음

 

 

7.

처음 1번에 나왔던 그 기도형님이랑 사장님이 친해지셨음 

같이 헬스도 다니고 가끔 술도 한잔씩 하시다 보니 

그 기도형님과 형님친구들 그리구 동네건달 들이 죄다 우리 술집에

오기 시작했음 나랑 알바누나는 점점 무섭기 시작했음 

항상 오면 메인중앙자리에 앉아서 사람들 시선을 즐겼음 

그날도 테이블에 건달들이 잔뜩와서 엄청나게 팔아주고 갔음

호프집에 와서 팔아준다며 양주를 먹고감 ;;;;

잔뜩 먹고 가서 테이블 치우는데 명품지갑이 떨어져있음

주인의 직업이 뭔지 알기때문에 감히 먹을생각을 못했음

한시간 후쯤에 그 지갑의 주인이 옴 

여기 지갑 보관해 놨다고 고대로 전해줌 

그 건달형님은 날 초넨 감동적이다 란 눈으로 쳐다보고는 

"넌 이제부터 내 동생이다" 라고 말하더니 

지갑에 있던 돈을 몽창빼서 나줌 

대략 30만원이 가까운 돈이었음 

나중에 뭔일이 생길지 몰라서 목숨걸고 사양했지만 

"만원짜리 몇장에 이런 좋은 동생을 얻는건 전혀 아깝지 않아" 라며 

존나 오글거리는 말을 지껴려놓코 뒤돌아서 나갔음 

 

 

8.

동생~ 동생~ 나왔어 라며 그 건달 들어옴 

뒤에 동생건달 형님건달이라며 날가르키며 여기 귀여운놈이 자기 동생이라며 소개함

존나 무서운데 술한잔씩 따르구 포옹했음

거기서 젤 오래된 건달같은 덩어리가 있다가 술자리가 있을꺼니까 

나보고 가게 끝나고 오라며 전화번호를 줌 

그리구서 양주랑 맥주랑 섞어서 따라주는데 

사장님이 업무시간에 술은 안된다고 하셔서 안된다고 거절함 

덩어리들 단체로 사장님 안되나요? 라고 물어봄 

사장님 안취할 정도는 괜찮아 라고 말함 -_-.... 

나 폭탄주 6잔 넘게 먹음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음 

가게 마감하고 속이 너무 않좋아서 집에가고 싶었는데 

전화 안하고 그냥 가면 진짜 다음에 죽을꺼 같아서 무서웠음 

전화 했더니 택시비 준다며 어디어디로 택시타고 오라고 함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단란주점을 가봤음 

 

9.

자칭 형이라고 하는 건달이 만취가 되서 가게로 왔음 

나를 일도 못하게 지 자리에 앉혀놓더니 자기한테 가슴아픈이야기가있다며 

검은 봉다리를 하나 테이블에 올려놓음

자기 어머니가 길에서 떡볶이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오늘도 거기가서 떡볶이 만원어치사오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

자기가 빨리 돈벌어서 어머니 가게하나 해드려야겠다고 막 우는거임 

하.... 참 건달도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해봤음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이사람은 진짜 날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았음 

막 뭐랄까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는 느낌..일라까

처음으로 편하게 형 내가 친구들동네에 많으니까 떡볶이 먹을일 있으면 

꼭 거기가서 먹을께 약속하고 기분좋게 둘이 웃었음 

그러더니 형이 나한테 이떡볶이 우리 어머니가 하신거야 너 줄려고 내가 사왔어

라고 하는거임 근데 ㅅㅂ ... ㅋㅋㅋ 나 방금 이모님이 야식 김치국수말이해주셔서

존나 맛있게 먹었는데 

만원어치나 되는 떡볶이를 보니 위장이 터질꺼 같았음 

빨리 먹어보라며 맛있지 맛있지 하는데 진짜 오래 들구왔는지 다식어서 

맛도 졸라 없었음 

감동적이었던 시간은 지나가고 내 위장이 살려달라며 몸부림치지만 

난 존나 웃으면서 형 진짜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 라면서 

만원어치 존나 많은 떡볶이를 먹고 있었음 

알바누나에게 살려줘 도와줘 먹어줘 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 누나는 매정하게 테이블청소를 했음 -_-... 

결국 난 그 만원어치 떡볶이를 다먹었음 

다 먹을때 까지 그 형은 안갔음

 

 

10. 

알바를 그만뒀음 취업준비때문에 알바할시간이 없었음 

그 형하고는 멀어지니까 어색한 사이가 되버렸음 

가끔 통화 문자만 하는 사이임 

당시 내 여자친구가 나보다 4살많은 연상이었는데 

여친님이 오늘 자기 친구들 남친하고 보자고 하는거였음 

부평 막걸리전집에서 만났는데 

나는 이제 대학생에 취업준비하고 있는데 

여친님 친구들 남친은 다들 대리에 뭐 아무튼 회사를 다 다니고 있는 입장이었음

남자란게 ... 참 그런게 자신감이 꿀리는거 같았음 

영계라고 귀엽다고 하는 말이 

너 돈없어 찌질아 라고 하는 거같아서 기분이 몹시 않좋았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덩치가 졸라큰 어깨가 날 퍽~~ 진짜 퍽!!! 하고 

치고 가는거임 

그래서 아나 !!! 소리쳐서 봤는데 

그 형인거임 ;;;; 

그 형이 너무 방갑다며 날 앉아주는데 그 형 동료들도 있던거임 

자기 동생이라며 소개해주는데 어느 테이블에 있냐며 너무 방갑다고 하는거임

근데 여친님을 데려온지라 게다가 여친님친구에 남친들까지 하... 뭐라 말할수 없는 

그냥 숨고 싶은 마음 뿐이었음 

 

테이블에서 조마조마 술한잔 두잔 먹고 있는데 결국 일이 터졌음 

그 형이 우리 테이블에 온거임 

한눈에 누가 봐도 건달표시가 나는 포쓰를 뽑내며 

그 형은 내 여친을 보더니 잘 어울린다며 자기가 아끼는 동생이라며 

술값 하라고 테이블에 10만원 짜리 수표 두장을 놓고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음 물론 분이기는 다들 개똥앂은 표정이었지만 

그 형은 늘상 그렇다는듯이 자기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음 

그 형이 나가자 같이 있던 덩어리들이 따라나가면서 

차례대로 많이 드십시요 형님 하면서 나가기 시작했음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날 엄청나게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음 

2차도 안가고 자리가 존나 이상하게 마무리가 지어졌음

여친하고 바에둘이가서 여친이 도데체 누구냐며 따져묻기 시작했음 

상황을 설명을 했지만 여친은 도저히 믿지를 않았음 

자기가 오늘 얼마나 창피한 상황이었느니 저쩌느니 

오히려 나를 보며 건달 아니냐며 몰아쳐서 이야기했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여친님에게 계속 이야기했음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형한테 미안했음 

그래도 그형은 나쁜마음은 하나도 없었던거 같았음 

오히려 연락도 잘 안하는 동생한테 자기가 정말 아끼는 동생이라며 

술 맛있게 먹고가라고 20만원이나 던져주고 갔는데 

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똥씹은표정과 썰렁한 리액션 그 민망함을 다견디고

어떻게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던 형의 모습을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너무 미안했음 

상황이 그랬다 뿐이지 객관적으로 생각하니 그 형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이 됐음

그래서 여친님이라고 불렀던 그 개년과 싸우기 시작했음 

어차피 먹을많큼 먹었고 영계가 천지인데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아줌마를

오래 만날생각은 없었기에 한번 불이 붙자 크게 싸우기 시작했음 

건달이랑은 절대 못만난다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던 그 개년은 

나에게 헤어지자는 이야기와 함께 집에 들어가버렸음

막상 나는 손해볼께 없다라고 한판했지만 

뻥 차이고 나니 뭔가 마음이 공허했음 

길에서 멍하니 있다가 그 형한테 전화를 했음 

참 그형 목소리가 왜그렇게 방갑던지 술한잔 사달라고 처음으로 졸라봤음

그형은 니가 웬일이라며 당장 오라며 흔쾌히 받아주었음 

그 형과는 그날 아무일도 없다고 말하고 그냥 재미있게 술을 마셨음

어색함도 어려움도 더는 나에게 없었음 

그냥 무언가 나와 그형의 벽을 깬.. 아니 내안의 벽을 깬 거같은 날이었음

오래 알고지낸 동네편한 형과 가시 술집에 있는 느낌 

주위 시선따윈 신경쓰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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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정확히 11년이 지난 지금 

 

여자친구는 바껴도 이형과 나는 변함이 없었음 

건달이란 인식은 지금도 많이 변하진 않았지만 

건달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란 인식은 확고해졌음 

 

그 형은 지금 기도 일을 그만두고 

한 작은 동네에서 PC방을 차려서 하고 있음 

가끔 가면 큰 덩어리들이 우르르 모여서 카트라이더 하는 모습을 

볼수 있음 엄청 웃김 ㅋㅋㅋ 

자기가 타고다니는 차 기름값도 못번다며 징징대지만 

가정도 생기고 항상 웃으며 행복해 보임 

 

지금은 평온하게 안정되게 살고 싶다며 운동으로 살도 많이빼고 

특유의 건달 옷차림도 많이 벗어나서 그냥 좀 뚱뚱한 형같아 보임 

 

다시 돌릴수 없는 내 젊은 대학시절 

힘들게 고생하면서 호프집 알바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것은 

 

바로 이 건달임

 

이 글에 달린 댓글

EMIYAMULJOM

 

군생활 교도소에서 하면서 느낀건데... 건달이라고 사람 아닌게 아니더라...

좀 욱하고 가오잡긴해도 사탕하나 초콜렛하나에도 정느끼는 순수함은 공무원보다 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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