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앞서 독백형식으로 쓰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나한테는 어릴적의 잊을 수 없는 몇가지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1994년 인천에 위치한 산동네에서 내가 태어났다.
어릴적 나는 누구보다 밝게 웃는 작은 장난꾸러기 였다.
희미하게 빛이들어오는 반지하에서 엄마 립스틱으로 벽에다 낚서를 하고
근처 피복공장 지붕에 집에 있는 신발은 다 던져놓고, 그런 작은 꼬마였다.
코묻은 돈으로 포켓몬이 그려진 빵을 사서 맛있게 먹던
철없던 시절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가난 이란걸 잘 몰랐다.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분홍색 천원짜리 한장이면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철이 없었다.
1999년 봄,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이사온 집은 조그마한 빌라였지만, 전에 있던 집보다 컸다.
무엇보다도 햇빛이 잘드는 집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다녔고, 전에 살던 동네엔 없었던 '놀이터' 라는 곳에서 그네를 타고
작은 내 몸에 흔들리는 그네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웃던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나는 영원히 행복할줄 알았다.
그 해 여름에 나는 불행이란걸 처음 느껴봤다.
평소처럼 내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오셨고
엄마는 저녁상을 차려와서 온가족이 밥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때, 엄마와 아버지는 말다툼을 하셨다. 무엇때문에 싸우는 거지? 라는 생각을 어렸던 나는 하지 못했고,
단지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에 잔뜩 긴장하고 움츠러들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처음보는 낯선 장면이 나에게 겁을 줬다.
말다툼은 끊기지 않았고, 아빠는 목소리를 최고조로 높이며 밥상을 뒤엎었다.
나는 놀라서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엄마는 피하지 못했다.
깨진 그릇들의 유리조각들과 밥과 반찬들이 거실에 퍼졌다.
아빠는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조용히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거실이 깨끗해 질때쯤 엄마는 겁에 질린 나에게 다가오셔서
'미안해, oo(제 이름)아' 이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우셨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때의 내가
엄마에게 '괜찮아요, 엄마' 라고 말했던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의 발등이 까져 피로 물든것하고.
다음 날, 어제 처럼 두분은 말다툼을 하셨다.
무슨 이유로 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나는 단어는 '돈, 집, 그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 따위였다.
말다툼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던 중
안방에서는 큰소리가 났다.
내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고있던 나는
큰 소리에 겁을 먹으며 달려나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악마가 있었다.
악마는 우리 엄마를 때리고 있었다.
어린 나는 감정을 버티지 못하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악마는 라이터기름을 꺼내더니 엄마에게 뿌리려고 했다.
한 손에는 피다 만 담배를 들고.
비명을 지르고 있던 엄마는 순식간에 작은 라이터 기름통을 쳐냈다.
그리고 그 작은 기름통은 내 발밑에 떨어졌다.
어렸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몇십초 뒤 나는 손에 작은 기름통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부터 도망쳤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도 나는 계속 뛰었다.
맨발로 달려나와 돌맹이를 차고 밟아 발에서 피가 나도 나는 계속 뛰었다.
그 시절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때 보았던 악마의 표정도.
어디까지 달려왔을까 하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 보았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저기가 천국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보던 나는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많은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겁이 났다. 알수 없는 통증이 나를 휘감았다. 아마 내가 '마음이 아프다' 는 말을 처음 느꼈을 때 였을것이다.
1미터나 겨우 넘었던, 아주 작았던 나는 세상이 처음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귀신따위를 보고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감이 나를 삼켜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때 나는 몸을 심하게 떨었던 것과
그리고 부들부들 떨던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을 때 아주 차가웠다는 것이다.
어두운 주차장 구석에 쪼그려앉아서 나는 계속 울었었다.
한 손에는 작은기름통을 든 채로.
그대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었다.
시간이 지나고 해는 산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른 산위로 달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 생각없이 계속 걸었다. 하루종일 맨발로 걸어서 그랬던지 다리는 저렸고, 발바닥은 곰발바닥 이었다.
집 앞에서서 문을 조심히 열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소리없이 집에 들어갔다.
안방문앞에서서 조심히 문을 열었다. 방은 깜깜했고, 그곳에 악마는 없었다.
단지 조용히 주무시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을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멍투성이 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집에서 그렸었던 점박이 강아지 처럼.
악마는 한동안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작은꼬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헛된 기대는 안하는게 좋다."
2009년 봄.
우리집은 다시 이사를 했다.
같은 마을에 있던 큰집이었다. 정말로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지만 말이다.
아빠 회사가 대박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큰집으로 이사올수 있었다고 부모님은 내게 말했었다.
아, 부모님이 아니라 엄마였다.
악마를 처음보았을 때부터. 난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빠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렸던 나는 그렇게 살았다. 우리는 그냥 공존했다.
어릴적 나는 '공존' 이라는 말을 한번에 이해할수 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그저 순수한 꼬마였다. 만화를 좋아하고, 문구점 앞에서
유행하던 팽이나 돌리면서 떠드는 그랬던 아주 작은 꼬마였다.
그리고
2002년 여름.
악마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비가 많이 왔었다.
거실과 부엌을 제외한 모든방의 불은 꺼져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그려져있었던, 지금도 내 마음한구석에서 날 괴롭히는
장면은 참담했다.
부숴진 아날로그 텔레비전과 라디오
깨진 유리창 그리고 양주병
바닥에 흐르는 양주
그리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나와
내 키보다 조금더 작은 골프채를 들고 있는 악마가 있었다.
악마는 엄마를 때렸다. 마치 당장이라도 죽이겠다는 것처럼.
나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 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악마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나는 미친개처럼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다리를 잡았다.
손에 매달렸다.
발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혀도 아프지 않았다.
소리쳤다. 미친개처럼 짖어댔다.
하지만 힘이 약하고 작았던 개 였기 때문에
곧바로 내동댕이 쳐질 수 밖에 없었다.
악마는 힘이 쎘다. 나보다 강했다.
하지만 엄마는 구할 수 있었다.
내가 내동댕이 쳐지고 엄마는 집 밖으로 도망쳤다.
3년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일이 있고 나서 1주일 후.
엄마는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악마는 엄마를 다시 때리지는 않았다.
조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나 악마는 아빠로 돌아오지 않았다.
악마가 내 아빠를 뺏어갔다.
우리는 그렇게 공존했다.
그리고 돌아온 엄마는
악마를 대신해서 나를 때렸다.
때렸던 이유는 간단하다.
눈빛이 건방지다.
말을 듣지 않는다.
제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다. 등등
그리고 나는 주먹과 발과
골프채와 몽둥이 등으로 맞았다.
아니, 맞아왔다. 쉴새없이 맞아왔다.
내가 어느정도 크기 전까지는.
한번은 그런적이 있었다.
밤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자고있는 내 뒤로 가서 뒤통수를 발로 찼다.
그 이유가 '재수가 없어서' 였던것도 기억한다.
피도 많이 났다. 멍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분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과,
맞는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엄마도 사라졌다.
집에는 악마 둘과 내가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고도비만이 되었고,
우울증 조울증 대인기피증 등의 정신병을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나는 왕따였다.
내가 다른 아이들 입장이었어도 못생기고 돼지인데다가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가진 애는 상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둬놓고 주먹으로 치고
발로 짓밟던 아이들의 모습은 잊어지지가 않는다.
2008년 여름
살은 빠지고 키는 커졌다. 친구가 생겼다.
그 동안 몇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의 두 악마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 죽이겠다 라던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부으며
언제나 그렇듯이 싸우고 있었다.
다만, 두 악마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점점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들이 싸울때면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말리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싸움때문에 나한테 피해오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싸움은 밤 10시 부터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그 동안 눌러왔던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자악마는 집을 나갔다.
여자악마는 집에서 분한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에게
여자악마가 말했다.
"OO아, 우리 같이 죽자.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
나는 여자악마에게 말했다.
"당신혼자서 죽어.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마."
내 말을 들은 여자악마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할말을 잃은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여자악마는 집을 떠났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몸에 유리가 박혀 그 상태로 집을 나간적도 있었고
집을 나와 주차장 구석에서 잠을 잔적도 있었다.
내가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그게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들이란다."
이 두가지 였다.
나를 제일 고통스럽게한 두 악마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한다....
상식이 먹히는 곳에서만 적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야한다.
보기에 그럴듯한 상식적인 사회안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집에는 세 악마가 살고 있다.
내 주위에는 악마가 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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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소설이라고 말해달라고.
죄송하지만 이런 소설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걸 가장 뼈아프게 알고 있으니까요.
응원해주신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사진인데 이렇게 쓰게되네요.
악마는 악마를 낳았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제가 저를 악마라고 말하는 이유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저로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제 존재는 제가 보았던, 그리고 지금도 보고있는 악마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 죄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분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항상 죄송하는 마음 잊지않겠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자살시도도 해보았습니다.
그 시절 저의 죽음을 막고, 저에게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해준 그분께 이 글을 바칩니다.